가을이 깊어져
서핑을 하다가도 일부러 육아 사이트나 우리아기 영어가르치기 우리아이 영재로 기르기 등등의 냄새를 풍기는 사이트는 피하고 있는데,
오늘 내 책 좀 고르느라 여기저기 둘러보다 잠깐 들어가게 된 육아 사이트에서, 역시나 수많은 엄마들(부모들)이 아가한테 책 읽히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
무슨무슨 전집, 무슨무슨 지능교육, 무슨무슨 학습지, 아직 돌도 안 된 아기 혹은 두 돌도 안 된 아기에게 책읽히기 대바람이다.
두 돌에 한글 읽는다고 자랑하는 엄마도 있는데, 아가 때부터 앉혀놓고 수도없이 책을 읽어주면 아기가 통으로 글자를 익힐 수 있다고 한다. 글쎄.. 두 돌에 아이가 상상할 세계는 충분히 많은데 벌써 글자에 갇히게 하는 게 좋은지 모르겠다.
단 한 건의 임상실험도 거치지 않은(!) 나의 편협한 전망으로는 앞으로 10-20년 후에 만 3세 이전 아기에게 인지발달을 지나치게 강조했을 경우에 나타난 부작용에 대한 연구보고서가 줄을 서지 않을까 싶다.
(물론 잠깐 잠깐 재미있게 읽어주는 책이 나쁘단 건 아니다. 뭐든지 지나친게 문제지.)
내가 영아-유아기 발달심리학이나 교육학 연구자는 아니지만, 만 3세까지는 정서(!)가 아닐까. 정서가 모든 능력의 가장 중요한 자원이 될 것이라 믿는다.
예를 들어 인지능력을 발달시키고 싶으면 어릴 때 인지능력을 키울게 아니라 정서의 바다를 충분히 넓고 깊게.
그리고 아기에겐 무엇보다 오감발달. 책자극은 아무래도 시각자극 위주다.
“새벽 이슬을 머금은 초록잎이 후두둑 흔들린다”는 문장이 아이에게 공명을 일으키고 다른 상상력으로 발전하려면 일단 이 아가가 이슬 머금은 풀잎을 밟아봐야 하지 않을지.
아닌게 아니라 육아전문학자들은 만 3세까지의 아이의 정서가 다른 능력의 원천이 된다고 강조하는데
정작 주위를 보면 이런 학자들의 의견보단 전집 판촉사원들의 입김이 더 센가 보다.
아차 남기려는 글은 이런게 아니었는데, 참 요즘 바보짓 자주 한다.(일단 차분하게 글 쓸 시간이 없다 보니;;)
가을이 깊어져 열음이랑 단풍잎에서 구르고 들어왔는데, 빨간 잎 한 장, 주황색 잎 한장, 노란 잎 한 장이 열음이 주머니에 끼워져 들어왔다.
단풍 밟으며 꺄르르 뛰어가고 주저앉고. 빨간빛 잎이 너무 이뻐 주머니에 넣어줬더니 꺼내서 만져보고 또 소중한 듯 집어넣어 보기를 반복한다.
맑고 맑은 손짓 눈짓. 조물딱거리는 손바닥 위에 은행잎이 내려앉아 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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