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육아 그리고 욕망;

0.

가끔 아이 키우는 일을 우아하고 유쾌하게 척척 해내는 것처럼 보이는 수퍼우먼들의 블로그나 개인 홈피에 들어가면 마음이 불편하다. 흥 저것들은 나와는 다른 종족들인가? 임빙.
(그럴리 없겠지만) 혹시 우리 홈피도 겉모습만으로는 아이 키우는 게 여유 있는 일이라는 이미지를 풍기고 있거나 우리 커플이 육아 – 친화적인;; 이들로 비춰지고 있다면 그거슨 오해다. 
이쁜 해빈이와 미루를 키우고 계시는 오즈님의 명언에 의하면 육아를 하는 동안 몸이 남용, 학대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

1.

처음 만났을 때 가늘가늘 하얗던 열음이 팔다리는 그간 놀이터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발적인 야근생활을 거듭한 결과 이제 구릿빛에 만져보면 찰지고 단단한 게 꼭 아기축구선수 같다-.-

자는 모습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떻게 저렇게 쑥쑥 컸을까 경이롭다.
아이는 우리의 조바심, 우리의 노력, 우리의 지혜를 다 뛰어넘고(또는 다 무시하고) 자신의 속도대로 큰다.
뭐든 ‘자기만의 때’가 되면 하게 되는 것 같다.
지난 시간 나에게 찾아온 큰 깨달음이 있다면 한 가지다.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 가장 어리석고 가장 위험한 것은 ‘어른의 속도에 맞춘 조바심’이라는 것.
물론 이렇게 깨닫고도 종종 그 함정에 빠져 허우적댈 때가 많지만 말이다.

2.

애가 없었던 시절에도 그랬지만, 한 존재의 경이로움과 감사를 깊이 느끼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나는,
아이 낳아 고군분투 또는 알콩달콩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이 안 낳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애가 있어야 인생을 알지” 같은 뉘앙스가 담긴 속내를 비추는 걸 보면 폭력적이라고 느낀다.
(직접 경험해보니, 애가 있음으로 해서 넓고 깊어지는 부분도 있지만 애가 있기 때문에 오히려 좁고 얕아지는 부분도 많다.) 

출산과 육아는 우선은 지극히 사적인 영역인 데다가
사회적으로도 우리나라와 같은 상황에선 사실 애를 기르겠다고 결정한 사람들이 살짝 돈 사람들이다(비하의 의미는 전혀 아니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상황과 사회 시스템이 출산과 육아에 적대적이란 뜻이다)

꼭 사회 시스템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취향이 애 낳고 기르는 일보단 자신만의 공간, 자유를 확보하는 데 더 적합하기 때문에 출산, 육아에 참여 안 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이해 가고(사실 나도 이 쪽에 가까우니까)

출산, 육아를 하고 싶지만 사회 시스템이 받쳐주질 않으니 생존을 위해 이 일에 뛰어들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의 처지도 십분 공감이다.
당장 직장과 육아를 병행하고 있는 부모들이 어떤 전쟁을 치러내고 있는지 윗집 옆집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인데 계획성 있는 커플들이라면 애 낳는 일이 두려운 게 당연하다.

애를 낳겠다는 여성(남성)들의 의지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사회의 미래를 희망적으로 보는가 절망적으로 보는가와 관련이 있다는 의견에 상당 부분 동의한다.
지금 우리 사회의 처절함은 애 낳아 기르는 일과는 아주 많이 어울리지 않는다.

중요한 건 내가 출산과 육아에 적대적인 사회 시스템의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건 가능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애 낳고 키우며 이렇게 저렇게 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선택에 대해 건드리는 건 옳지 않다.
시스템이 어떻고 환경이 어떻고 간에 아이를 가진다는 건 또 그 외의 다른 요인들이 얽혀 있는 일이기 때문이고 사적인 영역이니까.

내가 출산과 육아를 하지 않는 사람들을 존중하는 만큼,  딱 그만큼, 출산과 육아에 참여하고 있는 이들도 존중하면 될 뿐이다.
그리고 딱 그만큼, 출산 말고 육아만 선택한 우리 삶의 모습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으면 할 뿐이다.

물론 불임으로 괴로워하는 이들 앞에서 “우린 출산을 선택하지 않고 육아만 선택했다”고 하는 건 어쩌면 조금 교만한 말일 수도 있지만
우리 입장에선 삶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고심한 끝에 내려진 현재의 결론이다(나중에 또 바뀔수도 있으니).

우리의 출산은 아직 세상에 없는 아이를 만들어내는 일이지만
우리의 육아는 이미 세상에 있는 아이를 향한 것이다.

우린 출산과 육아가 여유 있고 우아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사실 여유있게 할 수 있을 만큼의 그릇도 안 되고 능력도 안 되니) 굳이 하자면 절실한 일부터 먼저 하자고 생각한 것뿐이다.
둘 중 더 절실했던 일이 우리에겐 후자였던 거다. 이미 세상에 있는 아이부터.

첫째를 이렇게 만나기로 결정하고 누군지 모르는 우리의 첫아이를 그리워하며 기다리던 시간에는 금방 또 둘째도 낳고 그러겠지 했는데
지금은 하나로도 고군분투하다보니 감히 그런 생각은 못 하는 상태이다.
그치만 시간이 흘러 우리에게 다시 여유가 찾아와 또 아이를 갖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면
우리는 그 때도 열음이처럼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
가끔 우리를 보며 거북하게 느끼는 이들이 있는데 신경 안 쓰고 살아가려고 하면서도 우리도 상처받을 때가 있다.
그냥 이것은 우리가 살다보며 자연스럽게 선택하게 된 삶의 모습일 뿐이다.
누군가가 어떠한 삶의 모습으로 살아가게 된 것은 그들에게는 특별했던 순간, 경험, 생각 그 외 이유를 알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얽혀 이루어진 결과다.

아이를 안 낳는 사람, 낳는 사람, 우리 같은 사람.. 다 그냥 같은 정도의 자연스러움으로 받아들여진다면, 그 뿐으로 족하다.

3.
사실 이런 글을 쓰려고 오랜만에 홈피에 들어온 건 아니고 진짜 쓰고 싶었던 글은 딴 건데 아이고-.-
육아를 하는 동안 내게서 빠져나간 그많던 욕망들에 대해. @#$#%#
아이를 키우는 동안 내가 아닌 듯 산 것같다. 억지로 그렇게 한 게 아니라 내 욕망같은 건 안중에도 없는 호르몬이 나온다 그냥.
내가 이뻐하던 그 많던 아름다운 인간들도 그 어떤 이야기도 시들하고, 내 가슴을 뒤흔들던 음악들도 뿡뿡이나 뽀로로 주제가에 밀려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기적처럼 요즘 조금씩 나의 욕망들;이 돌아오고 있는 것 같다.
열음이 18개월. 우리 이제 좀 살 만하다. 걷고 뛰고 말도 하고 우리가 조건문으로 말하면(“목욕 다 하면 자동차 갖고 놀거야” 같은) 수긍도 해 주니.
물론 아직 멀었겠지만 최소한 ‘아이를 향한 것 외에는 욕망 하나 가져지지 않던 처절한 나날들ㅠㅠ’은 이제 지나가고 있는 것 같다.
그리하여 요즘 첫번째로 기다리고 있는 영화는 ‘백야행’.
다시 여행도 떠나고 싶고 다시 공부도 하고 싶고 다시 폐인짓도.

Comments on this post

No comments.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Trackbacks and Pingbacks on this post

No trackbacks.

TrackBack UR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