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 영화, 아침, 위로

 

1.
MB정부가 들어설 것이 확실시되던 무렵, 허탈함 속에서도 그래도 아주 조금 무지 약간 매우 살짝 실낱같은 희망은 그래도, 이 정부가 무엇을 망쳐놓든 우리 사회의 민주화가 그동안 다져놓은 기본적인 개념이며 과정이며 절차들 같은 것이 기본선은 지켜주지 않을까 싶었는데,
절박한 요즘 우리의 상황을 보면 그것마저 이렇게 쉽게 위태로워질 수 있다니.
어딘가에 누군가가 달아놓은 리플 한줄에 공감하는 요즘이다.
우리 사회는 진보니 보수니 할 때가 아니라 상식과 몰상식을 구분지어야 할 때라고.
그래, 요즘 간절히 바라는 건 다만 ‘상식’일 뿐이다.
상식.

2.
한동안 하루에 한두편씩 (거실에서) 수십편의 영화를 보고 있는 중이다.
아이가 자고 나면 우리가 몰두해야 할 일들과 공부가 쌓여 있지만
우리는 얼마나 나약하고 또 자주 센티멘탈해지는지 이 수십편의 영화들을 거부 못하고 보고 있다.
리스닝 연습한다고 생각해, 그래 그러자, 유치한 위로를 하며.
(그런데 사실 열음이가 깰까봐 볼륨을 매우 약하게 해야 하기 때문에 주인공 목소리조차 희미한 상황이다;)

고르고 고른 영화들이었는데 이 영화 저 영화 보고 또 보니 감동도 성찰도 쾌락도 타성에 젖어간다.
이런 타성 속에서도 가슴을 덜컹이는 것들은 있다.
어제는 잭 니콜슨 주인공의 2002년 영화 <어바웃 슈미트>의 마지막 장면을 보며 ornus가 울었고
오늘은 안소니 밍겔라 감독의 유작 <브레이킹 앤 엔터링: 무단침입>을 보며 내가 울었다.
무단침입. 깨고 들어가지 않으면 이쪽에 선 이들과 저 쪽에선 이들에게 ‘관계’라는 것이 생길 수가 없다.
아프더라도 침입해들어가야 한다.

3.
명색이 저혈압이라 아침에 잠에서 깨기가 너무 힘들다.
아침은 항상 거실과 부엌에서 열음이와 ornus가 뭐라뭐라 쫑알대는 소리와 함께 온다.
“아빠 아빠 빠빠빠… 꼬….(꽃을 가리키는 소리)… 크오오…..(코끼리 가리키는 소리)..”
아침 시간에 있어줄 사람은 아빠라는 걸 이제 습관으로 아는지
열음이는 우리들 중 젤 먼저 깨서, 일어나라고 아빠 머리카락을 사정없이 잡아당기는데 나는 가만 놔둔다.
엄마는 이 시간에 절대 안 일어난다는 걸, 애도 아는 거다..;;

응가한 열음이를 씻기러 목욕탕으로 들어가는 소리, 단호박과 고구마를 잘라서 찜통에 찌는 소리,
자기 놔두고 그런 일 하지 말라며 “아빠 빠빠~ 엥~ 엥~ 떠떠~” 쨍알대는 열음이 소리..
이런 소리를 들으며 두 시간 동안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난다. 그래도 잘 안 일어나진다.
하루 살겠다는 시동 거는 게 너무 오래 걸린다. 

4.
아이랑 의사소통이 된다는 게 제법 재밌다. (ornus와 나는 이 과정을 훈련시키며 강아지 훈련하는 것 같다며 키득대긴 했다.)
신발 유모차에 넣고 오세요, 우산 들고 오세요, 심부름도 시키고
길을 걷다가 하늘을 보며 “저기 새다~ 새가 날아간다~” 그러면 집게 손가락을 까닥여 하늘을 가리키며 “어 어 어어” 거리는 아이의 몸짓.
젤 이쁜건
기분 축 처지고 우울할 때 “엄마 사랑해 주세요 사랑해 주세요~” 그러면
두 팔로 내 어깨를 폭 감싸주는 데다가, 우리가 지한테 늘상 하는 걸 봐서인지 손바닥을 움직거리며 토닥토닥까지 해주는 거다.
말이 필요없는 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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