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라도 늦어도

10개월 들어서자 열음이는 걸음마를 시작했다.
아직 편안한 걸음걸이는 아니고, 뒤뚱뒤뚱 혼자 걸어보려고 하는 모습이 너무 웃기고 신기하다.

이제는 열음이랑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돼서
“앗 뜨거워” 그러면 손을 뒤로 하고 뒷걸음질치고
ornus가 “열음이 잡으러 가야 겠다” 그러면 정신없이 기어서 도망간다.
어디든 밟고 등반하니까 위험해서, 침대나 소파에 올라갔을 때 안전하게 내려오려면 뒤돌아서 발을 먼저 내딛는 거라고 가르쳤더니
이제는 아주 낮은 턱이 있는 곳도 뒤돌아서 내려가려고 엉덩이 돌리는 모습이 너무 웃겨 죽겠다.
아빠가 욕실에 들어가니까 지도 들어가고 싶은지 거실에서 욕실로 내려가는 그 순간조차 뒤돌아서 발부터 내려놓는 걸 보고 웃었다.

교회에서 주위에서 아이들 자라는 모습을 보면
돌 지나고 천천히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들은 금방 편안하게 걸을 수 있게 되고,
열음이처럼 일찍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들은 아주 서서히 편안한 걸음걸이가 되는 것 같다.
그러니 빨라도 늦어도 나중엔 어느 정도 비슷한 시기에 편안히 걷고 뛰고 하는 듯싶다.
그러니 애들 빠르고 늦는 건 별일이 아닌 것 같다.

워낙 틈이 나질 않으니, 열음이가 지 장난감 갖고 놀 때 옆에 책 펴놓고 한장 두장 읽다보니 어느새 한 권이 되고 두 권이 된다.
우리가 요즘 읽는 책들은 전부 앞표지와 뒷표지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페이지(!)가 없다.
엄마 아빠가 책 읽는 걸 보면 꼭 기어와 북북 찢어놓으니까.

우리는,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바쁘고 여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나 자신을
내 부족함을 여유로움을
내 조바심을 너그러움을
그 어느 때보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는 느낌이다.

봄이 오는 듯 차가운 바람의 기운은 많이 잦아진 것 같은데(어쩌면 내 안의 봄을 기다리는 마음 덕분인지 모르겠다),
쨍쨍한 해가 나지 않은 지 너무 오래된 것 같다.
봄햇빛이 나면 아장아장 걷는 열음이와 산책도 하고 놀러도 갈 수 있겠지.

그러나 현실은 퍽퍽한 법-.-
일단 지금은 또 ornus가 로체스터로 출장 가 있는 동안의 삶을 대비해야 한다. 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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