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휴식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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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nus가 25일부터 열흘간 휴가다.
열흘 전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ornus를 쉬게 해 주고 싶어서
엄마의 바람대로 열음이를 엄마에게 며칠간 맡겨두고 왔다.
시간상으로는 내가 더 육아에 몰두하고 있지만 강도로는 ornus가 더 강하지 않았나 싶어서 처음으로 며칠 떨어져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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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둘이서만 데이트를 했다.
사실 둘다 육체에 남은 에너지는 거의 없어 집에서 그저 쉬고 싶던 참이라 놀러갈 계획조차 세우지 않았다.
그저 가까운 곳으로 영화를 보러 갔고,
몇 달 만에 처음으로 ‘교대로’가 아닌 ‘동시에’ 밥을 먹었다.
(움직임과 행동이 매우 빠르신 열음이와 함께 있을 땐 교대로 밥을 먹어야 한다. 한 사람이 안고 있을 때 다른 한 사람이 재빨리 먹어치워야 하는 것이다. 열음이는 보행기나 의자에서도 빠져나오려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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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만 남은 이런 시간들.. 자주 애틋해지고 쉽게 저릿해진다. 겨울이라 더 그럴까. 측은함도 몰려온다.
그러나 손잡고 걷는 사이 사이 자꾸 어딘가에 무언가를 떨어트리고 온 사람들마냥 가슴 한구석이 편치가 않다.
중요한 지갑을 잃어버리고 걸어다닐 때의 심정과 미묘하게 비슷하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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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화점>을 봤다.
그래도 대작 사극인데 기대했던 때깔(색감)이 좋지가 않아 시종 의아하고 의문스러웠다. 
감독은 그리스 비극을 언급하던데, 맞다. ‘이야기’의 전형이다.
사랑, 질투, 배신, 폭발. 인간 사이 전형적이고 본질적인(나쁘게 말하면 상투적인) 이야기를 밀어붙였다.
근래에 나온 영화치곤 드물, 그런 전형적이고 근본적인 감정들을 건드리는 멜로다. (멜로다!!)
조인성을 싫어하는 편이었는데 이 영화를 보고 음 울컥하는 감정을 끌어내는 진실함 같은 걸 갖췄구나, 조인성 다시 봤다.
그리고 그런 스타급 배우가 많은 것을 포기하고 벗어던졌다는 것, 쉽지 않은 결단이라 생각하기에 후하게 봐주고 싶어졌다.
과잉이었던 평소의 연기스타일이 많이 절제되어 기존의 허세끼;;가 덜어지고 적절히 측은했다.
주진모도 정말 다시 봤다. 삼각관계의 꼭지점을 안정되게 이끌고 나가고 있는듯한 느낌.
송지효의 목소리 완소였다. 그녀의 작품은 처음 본 건데, ornus랑 둘다 맘에 쏙 들어서 집에 돌아와 검색해봤을 정도.

근러나 기왕에 몸으로 시작된 사랑을 설득하고 싶다면, 베드씬이 더 농밀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아쉬움이 있었다.
많은 이들에겐 조인성 같은 스타가 찍어서 충격으로 다가오기도 하는 모양인데, “더 나아가지 않은 게 아쉽다”는 감독 말에 공감했다.
장면 자체의 수위는 강하지만 이음새와 만듦새가 밀도가 떨어져 그 격정의 소용돌이가 설득력이 덜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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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오래만에 문화생활을 하고 머릿속이 자극되어 걸어나오다가 손에 쥔 핸드폰 첫화면 열음이를 보니,
아꿍.. 이눔은 엄마아빠 없어도 여전히 슉슉 거리며 잘 기어댕기고 있을까, 여기저기 열어보고 빨아보고 사고치고 있을까.
극장에서 내려오는 에스컬레이터에 타자마자 약속이나 한듯이 각자 핸드폰을 꺼내 첫화면을 보고 있는 우리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났다.
영화의 밀도가 어떻고 감성선이 어떻고 색감이 어떻고 설득력이 어떻고 떠들다가도,
아 우린 애아빠엄만거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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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음이를 아홉달 간 품고 있던 그녀를 생각하면 찌릿해진다. 같은 여자로서 공감되는 그런 저릿함이 있다.
만약 아이가 원하고 그녀가 원할 경우 만나보고 싶다. 언젠가는 –
너의 근원이다. 내가 가슴으로 너의 엄마가 되었듯이 너는 그녀의 몸으로부터 왔단다.
아프고 행복하다.
열음이가 ‘아프지만 행복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기를 바란다.
그런 깊은 우물로부터 매력이 솟아나오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기도한다.

뱀다리 : 파업에 들어간 방송사분들 힘냈으면 좋겠고 여러모로 화딱지나는 현상황이지만 희망적인 소식이 있었으면 좋겠다. 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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