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에서, 애가 하나 없으니

1. 놀이터에서
운전면허 따고 한국에서 총 운전한 거리보다 여기 와서 며칠 동안 운전한 거리가 더 많은 것 같다.
하루에도 밥 먹으러 한 16킬로 달리고, 마트 가려고 한 12킬로 달리고, 회사 데려주러 한 15킬로 달리고, 햄버거 사먹으러 한 10킬로 달리고, 다른 동네 산책하러 한 25킬로, 왕복 거리까지 합치면 하루에 꽤 많이 운전하고 있다.

오늘은 동네 공원 놀이터에 가 봤다. 산호세가 여러 기업들 때문에 꽤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사는데 그 놀이터엔 중국계 미국인들이 많았다. 놀이터를 본 열음이 신나서 달려가다가 같은 나이 또래 남자아이를 만나서 같이 뛰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다람쥐를 잡는답시고 같이 뛰고 동굴 탐험이랍시고 같이 뛰고 둘이 잘 논다. 열음이는 한국어로 말하고 걔는 영어로 말하는데 노는 데 무리가 없다-.- 걔는 한 술 더 떠 지나가는 동네 할아버지가 인사를 하자 열음이를 가리키며 “얘는 내 친구에요” 소개까지 시켜준다. 미쳐.. 할 말 안 할 말 다 하며 잘 노는 것 같다. 모래밭에서 열음이는 운동화를 신어서 자꾸 모래가 신발 안에 들어가고, 그 애는 장화를 신어서 노는 데 거침이 없다. 걔가 “나는 장화를 신었다고 너도 신으라”고 그러니까 열음이 바로 나한테 “엄마 나도 장화가 있어야 된다”고..

꼬마애들이 여러 명 모여서 모래놀이를 하고 있는데 열음이는 가져온 모래놀이 장난감이 없자 다른 아이 꺼 빌려서 열심히 모래를 파고 있다. 그러다가 어떤 애가 말도 없이 열음이의 주걱을 가져가려 하자 열음이 “이거 내가 빌린 거야! 내꺼니까 가져가면 안 돼!” 큰소리다-.- 아니 친구들 말귀도 못 알아들으면서 친구들 면박까지 주는 거냐..;;;; 내가 못살아…….

2. 애 하나 떼놓고 와보니
여행 와서 며칠 안 됐지만 돌아가는 비행기표를 빨리 끊고 싶은 유혹이 몇 번 왔다. 은율이 때문에. 순둥이 은율이 할머니랑 외삼촌이랑 할아버지한테 이쁨 받으며 잘 놀다가도 가끔씩 이방 저방 방방마다 문을 열어보며 엄마를 찾는다고 한다. 엄마가 소파 뒤에 있나 소파 뒤에도 들어가보고 식탁 밑에 있나 식탁 밑에도 들어간다고. 은율이는 아프지만 않으면 징징대거나 보채는 스타일이 아니라 보채진 않는데,  “엄마가 날 두고 어디로 사라졌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찾곤 한다고 한다. 열음이 하나 키울 때는 내가 일을 하느라 할머니가 매일 오셔서 봐주셨기 때문에 할머니가 엄마나 마찬가지였는데, 은율이는 지금까지 내 품안에서만 자라다보니 엄마랑 떨어지는 게 익숙하지가 않다. 이번 여행에 은율이를 데려오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잔병치레가 많아 병원문제가 걸려서이지만 또 다른 이유는 2008년 이후로 쉬질 못한 나한테 휴식을 주기 위해서다. 과연! 애 둘 키우다가 애 하나 없으니까 이건 완전 식은죽먹기다. 은율이는 쉴 틈이 없이 손이 가는 아가지만, 열음이는 제 몸 제가 돌보는 유아다 보니 나는 몇 년 만에 정말 제대로 쉬고 있다. 이제 충분히 쉰 것 같고 은율이를 빨리 보고 싶다. 오래는 못 있을 것 같다. 다음에 올 땐 그냥 애들 다 데리고 와야 겠다. 이것이 운명이다. 애엄마는 어쩔 수가 없다. 애가 하나 없으니 일이 열 배는 줄어든 것처럼 편하지만 가끔씩 숨이 막혀온다. 살점 하나 떨어져 나간 것 같다.

그래도 동생 태어나고 아무래도 엄마아빠의 관심을 동생과 나눠 받아야 했던 열음이는 온전히 자기만 봐주는 우리와 함께 여기서 많이 신나 있다. 콩알만한 은율이와 둘이 함께 있으면 자꾸 우리도 모르게 열음이를 큰애 취급했는데 혼자 있으니까 영락없는 아이다. 말 한마디 한마디 표정 하나 하나가 얼마나 아기짓인지, 은율이랑 함께 있을 때 실감하지 못한 아기짓이 정말 많다. “꽁꽁나라로 친구들을 다 데려간다”며 가져온 장난감이랑 로보트랑 아빠 칫솔이랑 면도기랑 내 거울까지 다 냉장고에 집어넣고 지금 쿨쿨 낮잠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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