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해서 이것저것

1. 
그저께 한국 출발해서 어제 낮 12시에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했다.
오랜 시간 좁고 폐쇄적인 비행기를 타는 일은 성인인 나도 괴로운데 열음이가 잘 견딜지 살짝 걱정했는데 오히려 우리보다 비행을 더 즐기는;; 열음이였다. 비행기 이륙하면 구름 얘기 하면서 신나하고 난기류에 흔들리면 좋아하고; 밥 나오면 냠냠 맛있게 밥 먹고 좀 지루하다 싶으면 가져간 스티커책 펼쳐서 열심히 토마스 스티커 붙이고 색칠공부도 하고 잘 때 되니까 잠도 잘 자고 의젓하게 10시간 비행을 견디는 48개월 된 열음이 모습을 보니 28개월 때 겨우 두 시간짜리 도쿄에 가는 동안에도 이륙할 때만 잠깐 신나했지 30분쯤 지나니까 “나 이제 내리겠다고” “이제 땅에서 걸어갈거라고” 보채는 열음이 달래느라 당혹스러웠는데 지난 시간이 헛것은 아니다 싶어 감개가 다 무량했다. 열음이보다 많이 어린 아가들을 데려온 엄마들은 10시간 비행 내내 보채는 아가들 달래느라 지쳐있는데 그 모습을 보니 “나도 은율이 데려왔으면 저 꼴이었겠지” 안쓰러워 자꾸 마음이 쓰인다. 조금만 더 용기 있었다면 다가가 안아주고 달래주고 도와줬을텐데.

2.
두 번밖에 안 와본 미국이지만 미국 입국심사는 너무 꼬치꼬치 의심하고 말 붙이고 그래서 기분이 좀 안좋은데 이번 입국심사에서도 우리 앞사람한테 어찌나 질문을 많이 하고 보내주지 않는지 기분이 좀 그랬다. 나도 전에 뉴욕 갈 때 베트남과 캄보디아 입국 기록이 두 번씩 있는 내 여권을 보더니 자세히 물어서 기분이 나빴던 적이 있었다. 이번 입국 땐 ornus한테 왜 왔냐고 묻길래 비즈니스 트립이다 그랬더니 어디서 일하냐고, 어디어디서 일하는 엔지니어다 그랬더니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냐고;; 스마트폰 소프트웨어 만든다 그랬더니 갑자기 갤럭시 다음 버전은 언제 나오냐고, 진저 브래드는 봤냐고, 이러이러한 게 나왔으면 좋겠다며 수다가 늘어지는 심사관. 갤럭시 노트 타블렛이 10인치로 나올거라 그랬더니 급 좋아한다. 수다가 여기까지 이르렀는데 나보고 당신은 무슨 핸드폰 쓰냐고. 나는 구닥다리 피쳐폰 쓴다 그랬더니 껄껄-.-

3.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바로 미리 예약해둔 자동차를 찾아 산호세로 향하는 베이지역을 잇는 유명한 101번 고속도로를 타고 숙소가 있는 서니베일 스트릿으로 향하는데, 참내 이런 햇빛은 경험해보지 못한 햇빛이다. 따뜻하고 온화한 햇빛이 아니라 반사판을 댄 듯 쳐다볼 수가 없이 눈부시게 쨍한 날카로운 햇빛이다. 은색 펄가루가 섞인듯한 햇빛. 햇빛은 이렇게 쨍한데, 바람이 너무 차다. 누가 이곳을 연중 온화한 날씨라고 했건가. 한국보다 오히려 더 차가운 칼바람이 불어 나는 가져간 겨울 외투를 여미고 다니는데 여기 사람들은 반팔 티셔츠 차림이다. 이게 뭐야.. 그니까 우리가 익히 보아온 캘리포니아 애들의 반팔 차림은 얘네들이 밥 많이 먹고 남는 건 체력이라 저러고 다니는 거였던 거야. 정말로 따뜻해서가 아니라. 난 추워 죽겠고만. 가져온 가벼운 옷들은 하나도 못 입고 칙칙한 패딩만 입고 다녀야 할 판이다.

4.
ornus 가 회사에 있을 땐 나 혼자 열음이를 데리고 돌아다녀야 하기 때문에 여기 운전에 익숙해져야 하는데 몇 가지 적응이 안 되는 것들이 있다. 스탑 싸인이 있으면 반드시 바퀴를 멈추고 서야 하고, 우회전도 우리처럼 통밥으로 하는 게 아닌 곳들이 좀 있고, 네비게이션은 무슨 다섯살 어린애가 장난으로 그려놓은 수준이야 너무나도 후져서 네비게이션 믿고 있다간 길을 잃기 일쑤다.

어제는 가까운 곳을 목적 없이 돌아다니다가 숙소에서 먹을 것 좀 사느라 마트에 가 봤다. 과일코너에 잘디잔 귤을 팔길래 “아 진짜 캘리포니아까지 왔는데 오렌지는 없고 귤만 사 간다며” 사서 한 입 베어무는데 이렇게 달면서 새콤한 귤이라니, 한국서 먹어본 귤과는 뭔가 차원이 다르다. 블로그에 누가 샌프란시스코 재래시장에서 천도복숭아를 사먹고 너무 맛있다는 후기를 올려서 과연 그럴까 싶었는데 진짜 그렇다. 달디단 꿀맛인데 새콤하기까지하다. 강렬한 햇빛 때문에 과일맛이 이런 걸까..

산호세 지역 중에서 그동안 이름을 좀 들어왔던 조용하고 따뜻한 분위기의 동네들 – 팔로알토, 마운틴뷰, 쿠퍼티노, 로스 가토스, 사라토가 등등 이쁜 곳들은 아직 안 다녀보고 어제 설렁설렁 다닌 곳은 뭔가 좀 휑하고 으스스한 분위기가 감도는 동네들이었다. 쌀국수 먹으려고 들어간 베트남 타운은 들어서자마자 살짝 뭔가 다른 분위기가 감도는데  ornus가 농담삼아 베트남 갱들 어쩌고 그래서 긴장하는데 팔다리에 빼곡히 문신한 남자들 옆자리에 앉아 쌀국수 먹다 왔다.

뭔진 모르지만 외로운 느낌이다. 차곡차곡 앞뜰마다 잔디밭을 가진 아담한 단독주택들, 길거리마다 나무와 꽃들이 우거져 숲에 온 분위기처럼 녹지가 참 많아 온통 푸르른데 왜 이렇게 쓸쓸한 느낌이지. 예상치못한 쌀쌀한 바람과 운전 때문에 긴장해서 그런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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