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천적 화해불가능


세계와의 화해가 선천적으로 불가능한 사람도 있다. 천생 시인 최승자처럼.

최승자는 1993년 “따뜻한 무덤”을 뚫고 나온 말들로 네 번째 시집을 냈다. 여전히 고독한 자의식에 붙들려 세계의 오염을 견뎌내(이광호)던 불혹의 시인은 결국 정신병원으로 망명한다. “세상이 따뜻하고 정상적으로 보이면 시를 못 쓰게 되지요. 그건 보통 사람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이니까요.” 조화와 안정으로 귀결되지 않는 비타협과 난국의 목소리 쟁쟁하다.

 이 병든 시대에 진짜로 병자가 되어 살아가는 한 시인이 있어 나는 놀랍고 아프고 반갑고 서럽다. 자기파멸로 자기생장을 이루는 화해불가능성의 생(生) 시(詩). 그것은 고착인가. 무능인가. 비정상인가. 불행인가. 건강함인가. 고귀함인가. “행복행복행복한 항복”인가…최승자의 “이 시대의 사랑”법은 내게 “귀신처럼” 다가와 묻는다.


이것은 내가 가끔 가서 위로받곤 하는 블로그에서 일부분 얻어온 글이다. http://beforesunset.tistory.com/
요즈음의 나는 내 안에 있어 세계와 선천적으로 화해하기 불가능한 부분들은 지워가며 살고 있다.
내 안의 그것들을 꺼내들면 나도 내 아이들도 생존하지 못한다.
그러니 나는 나인가. 내가 아닌가.

 

Comments on this post

No comments.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Trackbacks and Pingbacks on this post

No trackbacks.

TrackBack UR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