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희라면..


오정희라면, 이라고 생각하는 게 처음이 아니다.

그를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너무 아름다운 것이나 너무 조용한 것과 맞닥뜨릴 때,
어떤 섬뜩함에 한밤중에 잠이 깰때, 아이를 업고 가로질러갈때나, 오래된 목조계단을 내려올 때에도 문득
오정희라면, 생각했다.

그라면 처지에 도사린 말해질 수 없는 삶의 이물스러움과 비애와 초조들을 주술적인 작품으로 끌어올리라고..

_ <작가세계 25호>에서 신경숙

 


 

요즘은 오정희를 읽고 있다.

2006년 가을, 희미한듯 오래 가는 우울감으로 치유가 필요했을 때
그의 <옛우물>을 읽고서 진저리를 쳤던 기억이 있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비애며 기쁨이며 쓸쓸함이며 막막함, 사물의 냄새와 소리와 모든 것에 적확한 표현을 찾아내고야 마는,
비감이 서린 촌스런 직유를 전혀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본질로 내려가고야 마는 그의 문체에
진저리가 쳐졌다.

그는 중심을 아는 사람 같았다.
그가 아는 생의 중심이란 여성만이 통감할 수 있는 그 무엇이다.
나는 남성 소설가의 글들을 읽으면, 끝까지 평행선이다.
그들의 전투욕과 그들의 호기와 그들의 치기를 잠깐 호기심 섞인 눈으로 흘깃 볼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들의 글들은 내게 전혀 치유가 되질 않는다.

나로선 혀끝에만 우물쭈물 맴돌다가 결국 뱉지 못한
말들이 오정희를 통해서는 말해지고 있다.

그는 1970년대에 강원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부임한 남편과 함께 춘천에 내려가
주부로 살면서 얼마 안 되는 작품을 발표해왔다.
그는 속에 저런 것들을 품고 어떻게 아내로, 엄마로, 중년의 여성으로 춘천의 하루하루를 살아냈던 것일까.
오정희를 읽은 날 밤에는, 이런 생각들로 섬뜩하리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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