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때가
사회복지사님이 가정방문을 하시며 나와 많은 상담을 하셨다.
나와 많은 이야기를 나눠본 이후, 다 좋은데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면..
아이가 나와 같은 모습으로 성장하지 않는다고 해서 조급해하거나 조바심 갖지 말라는 말이었다.
돌려서 돌려서 말하는데 눈치 백단인 나! 또 단번에 알아들었다. 하하
안그래도 내가 육아를 하면서 가장 많이 노력해야 할 부분이 이 부분이라고 벌써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참 빠릿빠릿한 아이였다.
말도 남보다 빨리, 책도 남보다 많이, 노래도 남보다 열심히,
엄마 말도 오빠보다 더 잘 알아듣고 말도 오빠보다 빨라서
세 살 짜리 오빠 말을 두 살 짜리 내가 통역해서 엄마에게 전달해줬다고 하니까.
사람은 누구가 자기 기준으로 세상을 본다.
안 그러려고 해도 자기가 경험한 그 좁은 틀을 벗어나기가 힘들다.
그래서 더욱더 의식적으로 노력하려고 한다.
요즘 육아서를 많이 보고 있는데
명심해야 할 것은
조급한 부모가 아이를 망치고, 느긋하게 기다려주는 부모가 안정적인 성격을 가진 아이를 만든다는 것이다.
육아 관련 사이트들에 드나들다 보면 많은 엄마들이 다른 아기와 자신의 아기의 성장과정을 비교하며 걱정하는 글을 올린다.
“우리 애가 24개월인데 말은 ‘엄마’밖에 못해요.
우리 애가 10개월인데 기지를 않아요.
우리 애가 15개월인데 걸음을 못 떼요.”
그럴 때마다 달리는 현명한 선배 엄마들의 조언.
모든 아기들은 ‘자신만의 때’가 있다는 것이다.
자신만의 때가 오면 기고 걷고 말하고.
아, 이 얼마나 시적인 말인가.
모든 사람들에겐 ‘자신만의 때’가 있다.
농담처럼 하는 말이지만, 아기가 몇개월인데 말을 못해요 하는 질문을 보면서는,
별로 걱정이 안 된다.
5살 때까지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는 대표적인 인간이 내 곁에 있다.
ornus. 5살 때까지 말을 하지 않아 언어치료연구소에까지 다녔다는 ornus.
학교 들어가서도 받아쓰기를 빵점만 받아와서 엄마를 속상하게 했다는 그 ornus.
지금 전혀 문제 없이 잘 살고 있지 않는가. 게다가 킹왕짱 멋지기까지-.-;;
난 누가 한글을 가르친적도 없는데 혼자서 하도 책을 들여다보니 저절로 한글을 익혔다.
시골에서 조기교육 받아본 적도 없고, 누구한테 배운 적도 없고.
그렇게 빨리 말을 하고 한글을 익히고.
그러나 ornus와 나에게는 서로 다른 때가 있었을 뿐이다.
아이를 기르면서 나는 인간에 대한 공부를 더 해 보련다.
인간에 대한 공부는 평생에 거쳐 계속되어야 할 일이겠지만 특별히 나는 이 시기를 통해.
대학 때 철학책에 굶주려 이책 저책 이 철학자 저 철학자 허기진듯이 읽어댔듯이.
아기가 자라는 모습을 겪으며 수양하며.
인간에 대한 공부를 하고 싶다.
이렇게 적고 나서도 지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았다 한다.
내가 입양사실과 육아에 대해 공개적으로 글을 쓰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아기 부모가 아기 얘기 쓰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공개입양에 대해, 혹시라도 잘 모르는 이들에게 알려주고자 하는 이유도 있다.
입양아들은 언젠가는 진실을 알게 된다. 그 시기가 늦으면 늦을수록 아기의 공허감은 커진다고 한다.
가정은 단지 혈연으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라 서로 사랑하고 염려하는 영혼의 교감으로 이루어진다는 걸 어릴 때부터 가르치고,
엄마 아빠와의 안정적인 애착관계를 통해 세상을 건강하게 받아들이는 성품으로 길러낼 수 있다면,
어린 나이부터 자신이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도록 하는 게 훨씬 더 긍정적이라고 한다.
입양부모들과의 모임도 조금씩 시작하고 있는데 다들 공개입양을 지지하고 있고 각자의 처지에서 알리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건강하게 자란 아이라 할지라도, 그에게는
어떻게 해도 채워지지 않는 ‘근원에 대한 그리움’, ‘자신의 존재에 대한 공허’가 자리할 것이다.
그러나 난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그 ‘근원에 대한 공허’가 그 아이에게 남과 다른 색을 입힐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
우리는 누구나 외로운 존재이다. 그 외로움이 그에게서 조금 다른 색과 향을 내주길. 그렇게 겸허하게 바라고 싶다.
또한 어릴 때부터, 세상엔 서로 다른 모습과 처지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헤아릴 줄 아는 ‘품이 너른 아이’로 키우고 싶다.
우리는 사랑을 할테니. 너는 그 사랑으로 건강하게 자라서 너의 공허를 너만의 색으로 물들여라.
정말 보고싶다.
엄마가 수 년 전에 피 한 방울 안 섞인 아빠를 만나 사랑하고 성장하며 존재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뜨거운 경험을 했듯이
너를 또 그렇게 사랑할게.
보고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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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on this post
이미 깊은 생각으로 여러가지 일들에 대해 마음의 준비를 해 놓으셨군요. …좋은 커뮤니티가 옆에 있길 기도합니다. 가족들이 힘이되지 않을때를 대비해서… 호주로 오시면 제가 잘해드릴께요^^
잘 키워서 내게 생길 아이의 좋은 형이나 오빠가 되길 기대해본다. 좋은 모범이 있어야 그 모범을 따라 가는 이의 감사의 모양도 있을테니. 수민아~ 널 기대하고 축복한다. ^^
오즈/ 여러가지로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오즈님 아이 키우는 얘기 재미있게 읽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