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구 소설을 좋아하는 동네 친구
내 동네 친구는 나보다 수십 년은 더 사신 분이다.
밥 해 먹기 싫고 귀찮은 날, 항상 가는 우리 집 바로 앞 조그만 떡볶이 집 아주머니. 60대 초반쯤 되셨을까.
내가 좀 아무하고나 거리 없이 수다 떠는 취미가 있다보니,
배고파 헐레벌떡 들어가 오뎅꼬치를 간장에 찍어먹다말고 아주머니에게 정치얘기를 꺼냈던 게 인연의 시작이었다.
가끔 지나가다 배고파서 살짝 들여다보면 오뎅 국물 먹고 가라고 손짓.
일 끝나고 썩은; 얼굴로 들어가서 배고프다고 하면 메뉴에 없는 얼큰한 콩나물국도 끓여주시고,
오징어도 삶아서 초고추장에 찍어주시고, 냉장고 깊숙한 데서 열무김치도 꺼내주신다.
내가 워낙 누구에게든 질문을 잘 하는 스타일이라, 아주머니 따님들 얘기, 아주머니 음식 만드는 얘기 이것 저것 묻다보니
어느새 일주일에 하루 이틀은 들러 수다 떠는 관계가 시작됐다.
오늘도 날은 쌀쌀하고 집에 밥은 없고 해서 들어가 김치 볶음밥을 기다리고 있는데 식탁 한쪽 구석에
민음사에서 나온 이문구의 ‘우리 동네 류씨’, ‘우리 동네 최씨’ 등 우리 동네 연작을 묶은 소설집 <우리 동네>가 놓여 있다.
가운데 책갈피가 끼워있길래
“와. 아주머니 멋쟁이~ 이거 지금 읽는 중이세요? 아니시면.. 저 이거 가져가서 봐도 되나요? 흐흐”
“아이고. 난 읽은 지 오래됐으니 맘대로 가져다 읽어~ 이문구 씨 내가 참 좋아하는 소설가여..”
그러고보니 가게 저쪽 구석 삐뚜룸한 메모판에 꾸깃꾸깃 신문지 같은 게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신문에서 스크랩한 정호승, 김남조, 강은교, 천상병, 백석.. 등.. 우리 시대 현대작가들의 대표 시들이 걸려 있다.
“내가 저거.. 시집으로도 다 갖구 있지만 저게 신문에서 ‘우리 현대시인’ 특집으로 나온 거라
시마다 옆에 그려진 그림도 이뿌고 해서 버리기 아까워 저렇게 붙여놨지” 하신다.
“아주머니. 이문구님 글 어떤 점이 그렇게 맘에 드세요?” 하고 물으니
“저 분이 충청도 보령에서 태어나셨어. 중학교 때까지만 거기 살다가 소년가장이 되어 서울로 상경했지. 서울서 행상을 하며 고생하다가 서라벌 예대에서 공부했거든. 근데 중학교 때까지만 살던 그 보령의 농촌 풍경을 어찌나 기막히게 샅샅이 묘사하는지 몰라. 내가 보령 사람이라 잘 알아. 어찌나 맛있고 해학적인지. 이야기꾼이야 이야기꾼.
근데 돌아가셨잖아.. 그 때 내가 얼마나 속상했는데..” 대꾸하신다.
푸근하면서도 나긋나긋 소녀 같은 눈빛으로 소설가 이문구며 이청준이며 시인 천상병에 대해 풀어놓으신다.
“사람마다 허기진 부분이 다 달라 그치..? 어떤 사람들은 돈에 허기져서 재테크며 아파트며 돈 불리는 데 정성 쏟고,
어떤 사람은 사랑에 허기지고.. 난 책에 허기졌어..
내가 어렸을 때 유일하게 부러웠던 게 책 많은 집 아이들이었어. 나는 중학교 다닐 때 소설 책 한 권 사기도 어려운 형편이었는데 어느 날 친구집에 놀러갔더니 기다란 책꽂이에 현대소설이며 시들이 수십권씩 꽂혀 있는 거야. 그 때 처음으로 저거 다 훔쳐왔으면 하는 생각까지 들었는데..”
순간 아주머니 눈빛이 반짝거리다 못해 발갛게 물들다 만다.
“내가 배울 기회가 있었으면 문학을 공부했을텐데.. 아이구.. 그 얘긴 해서 뭣해….”
우리 농촌에 산업화가 시작되던 무렵, 농촌문화에 도시문화가 유입되면서 벌어지는 웃지못할 순간들을
충청도 토착어로 버무려 맛깔스럽게 그려낸 이야기꾼이라는 평가를 받는 소설가 이문구.
아주머니 말씀처럼 그는 보령에서 태어나 중학교까지 살다가 소년가장이 되어 상경해 행상을 하며 고생하다가 서라벌예대(현 중앙대)에서 김동리 소설가, 서정주 시인 밑에서 공부했다.
<우리 동네> 연작은 읽지 못했는데, 동네 친구 덕택에 빌려 들고 들어왔다.
“담번에는 우리집에 있는 다른 소설책이랑 시집도 가져오마” 하신다.
그렇잖아도 배고플 때 들어가서 아주머니랑 살아가는 얘기, 세상 얘기 하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이제 쬐끄만 한국문학 도서관을 공짜로 얻은 기분이다.
게다가
“남편 없어도 밥은 챙겨 먹어야지. 떡볶이 먹지 마 밥해 줄게. 밥 먹고 들어가” 하며
쑥갓 넣어 동태 찌개도 만들어주시고 고춧가루 팍팍 뿌려서 얼큰한 콩나물국도 끓여주시니,
나한텐 과분한 동네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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