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 – 시시하다
미당 서정주의 [화사집](1941)을 읽는 것은 한국어의 관능 속에 깊이 잠겨 그 속살을 더듬는 것이다.
제 몸에 한국어의 감각을 새겨넣으며 자란 이가 [화사집] 앞에서 전율하지 않기는 쉽지 않다. 스물여섯 살 난 청년이 낸 이 얇은 시집은 한국어가 감당할 수 있는 감각의 가장 아스라한 경지에 우뚝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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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너무 남용돼 아무런 울림도 주지 못하는 상투적 표현을 다시 끄집어내자면, 미당의 시언어들은 지난 세기 한국어에 벼락같이 쏟아진 축복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서 미당의 죽음 앞뒤로 문단 안팎을 소란스럽게 한 그의 정치적 몸가짐 문제를 피해갈 수 없다. 미당의 경우를 두고 시와 정치의 관계를 따져보려는 논자들이 쉽게 치이는 덫은 문학과 삶, 또는 문학과 정치를 모순 없이 일관되게 설명하고자 하는 욕망의 유혹이다. 그래서 그의 행적에 비판적인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그의 시적 성취의 허약함을 찾아내려 하고, 그의 문학적 성취에 매혹된 사람은 되도록 그의 행적을 호의적으로 이해하는 데 기여할 상황논리를 구성하려 애쓴다. 이렇게 문학과 삶을 내적으로 연결하려는 것은 오캄의 면도날처럼 매력적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설명의 깔끔함이 아니라 사실 앞에서의 겸손함이다.그렇다면 사실은 어떤가? 미당의 삶은, 적어도 그의 공적 자아의 행적은, 시시한 것이었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젊은 시절 태평양전쟁 시기에 쓴 전쟁선동시든 갑년이 넘어 군사깡패에게 바친 생일 축시든, 그런 문자행위가 그에게 절박한 신체적 위협과 함꼐 강요되었다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그런데도 미당은 천역덕스럽게 그런 역겨운 언어들을 자신의 이름으로 활자화했다. 그리고 아무런 뉘우침 없이 종천순일이라는 궤변으로 그 행적들을 얼버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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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인격의 불연속성이라는 해법을 제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오장 마쓰이 송가>를 쓸 떄의 미당과 <무등을 보며>를 쓸 때의 미당은 다른 자아를 지녔다고 설명하는 식이다. 어제의 내 뇌세포들이 오늘의 내 뇌세포들과 완전히 동일할 리는 없으니, 이것은 보기에 따라 그럴듯한 설명이다. 그러나 이런 자연과학적 곡예는 어떤 생애에 대한 평가 자체를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게 한다.이런 평가의 혼돈과 불능을 치유할 길은 없는가? 있다. 문학적 재능 곧 글 쓰는 재주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춤 추는 재능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선선히 인정하는 것이다. 그럴 경우, (시민으로서의 정치적 행적이 아니라) 문인으로서의 정치적 행적을 심문하는 것은 무용가로서의 정치적 행적을 심문하는 것만큼이나 부질없는 일이라는 점이 또렷해진다. 문학이라는 장르에 특별한 위엄을 부여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슬픈 일이겠지만, 문학은 그 정도로 시시한 것이다. 엄중한 것이 삶과 역사라면, 하찮은 것이 문학이다. 미당은 시시한 삶을 살면서도 결코 시시하지 않은 문학을 이뤄냈고, 그럼으로써 문학이라는 행위 자체가 시시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었다.
– 고종석, [모국어의 속살] 중에서 –
고종석은 일전에도 이와 비슷한 글을 썼다. 김정란과 신경숙과 은희경의 문학관을 비교하면서, 김정란이 문학을 이야기하면서 즐겨 사용하는 위의(威儀), 신비(神秘), 영성(靈性), 영혼, 신화, 아우라 같은 말들은, 그가 문학을 신성화까지는 아니더라도 특별한 그 무엇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며, 문학에다가 다른 예술과는 구별되는 특별한 아우라를 부여하고 그런 아우라 한가운데 서 있는 자신에 대한 깊은 애정-나르시시즘-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신경숙이 김정란을 닮았다고 말한다면, 문학에 대한 자신의 관점은 일상 너머의 문학이라는 환상을 깨끗이 지운 것처럼 보이는 은희경의 세속적인 태도와 비슷하다고 말했던 것이다.
2.
고종석의 [모국어의 속살]을 읽고 있다. 고종석은 모국어의 속살에까지 다다랐다고 할 만한 한국 시인 50명을 다루고 있는 이 책을 해당 시인의 시집 한 권을 옆에 두고 한 꼭지 당 일주일을 생각하며 읽어보기를 권하고 있다. 그렇게까지는 못하겠지만 요즈음 아니 이전부터 주로 내가 읽는 책은 내몸에 새겨진 한국어의 감각을 아찔하게 느낄 수 있는 글들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내가 가장 청춘의 시기였을 때에도 앙드레 지드며 헤르만 헤세, 릴케며 보들레르로부터 깊은 공감을 얻어보지 못했다. 이것은 한국어 이외의 언어로 쓰여진 문학을 향한 나의 여정이 비천한 탓이기도 하겠지만, 그들로부터 서정주와 김소월과 백석 그 이상의 감동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내 입으로 나오는 언어가 단지 한국어라는 사실 때문만이 아니라 내 온몸에 새겨진 감각이 한국어이기 때문이다.
3.
엄중한 것이 삶과 역사라면, 시시한 것은 문학이라.
쓰나미를 보고 나니 엄중한 것이 자연이라면 시시한 것은 인간이로구나. 이렇게 시시하도록 무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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