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급, 세계테마기행


1. 수고했다

ornus가 선임연구원에서 책임연구원으로 승진했다.
때 되면 다들 하는 평범하고 자연스런 진급이지만 내게는 각별하게 다가온다.
평소에도 회사일과 가정일의 균형을 맞추느라 노력을 많이 기울이는 ornus지만
작년은 내가 9개월 내내 임신 증상으로 인해 괴로워했던 터라 유독 힘들었던 한 해 였을 것이다.
입덧이 절정이었던 한 3개월간은 아침부터 일어나서 애 먹이고 씻기고 가방 싸서 어린이집 보내주고 뛰어서 출근하고
돌아오면 밀린 집안일 하고 애 먹이고 씻기고 놀아주고 재우고 새벽에는 토하는 내 등 두들겨주느라
심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랫동안 한 곳에 있으면서 경력이 정체되는 느낌이 들어 다른 길을 알아보던 차에 다행히 좋은 기회가 와서 지금 부서로 이동해서 일한 지 2년째인데 작년엔 우리집의 이런 특수상황과 겹쳐, 노력해서 들어온 이 부서를 떠나 상대적으로 한가한 곳으로 또 이동하겠다고 말했다가 상사분의 설득 끝에 그냥 남기로 하는 등 우여곡절도 많았다.

야근, 회식에 거의 참여 못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종일 누워 있던 나를 업고 수액 맞추러 병원 데려가느라
가끔 회의까지도 빠져야 했을 정도였으니.
지금 ornus의 회사에서 나름 가장 바쁘고 일 많은 부서에서의 생활과 이런 가정생활을 도맡으며 해낸 일이기에
나 아니면 누가 축하해주리.. 축하해주고 싶다.

지금이야 이렇게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작년 한 해 우리 생활은 그야말로 백조가 물 안에서 발을 동동거리는 형국이었다.
수고 했다. 정말.
수고선물로 맥북 프로~를 쏠 수 있으면 참 좋겠다만 자기야 그건 좀 있다가. 은율이 분유값이 급하다보니..ㅠ.ㅠ

2. 세계테마기행

은율이가 이제는 제법 컸다고 얌전히 자 주지 않고 낮에는 하루 종일 내 팔에 안기려고 칭얼댄다.
그래서 거의 못 내려놓고 안고 생활하다보니(팔 아파 죽겠다ㅠ.ㅠ) 짬짬이 책 읽는 것도 여의칠 않아서  cook에서 다큐멘터리를 찾아 보는데
ebs에서 했던 세계테마기행을 재밌게 보고 있다.

익히 알려진 여행지보다는 나라이름도 생소한 동유럽이나 중앙아시아의 곳곳을 다니거나, 잘 알려진 미국 같은 나라에서도 뉴올리언스나 남부지역에서 테마를 정해 돌아보는 잔잔하고 소박한 여행 프로그램이다.
특히나 여행지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영화감독, 가수, 음악가, 사진작가 등 다양해서 여행지에서 발견하는 그들의 모습을 살피는 것도 소소한 재미로 다가온다.

크로아티아를 여행했던 소설가 은희경은 의외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의 작품을 읽을 때 냉소적이고 차갑고 어느 정도는 심드렁한 여자를 떠올렸는데 여행지에서 그는 굉장히 소녀적이고 공주같기도 한 여자였다.
재즈 가수 정말로가 여행한 뉴올리언즈 특유의 끈적한 분위기와 음악이 일상이었던 동네사람들, 카트리나로 집을 잃은 할아버지들이 불렀던 노래도 기억에 남았다. 미국에선 뉴올리언스와 산타페, 그리고 영화 <파리, 텍사스>에 나왔던 황량한 사막을 꼭 여행해보고 싶다. 차를 타고 한참을 달려도 옥수수밭만 계속된다는 아이오와주의 길 위에도 서 있고 싶다.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나른하고 끈적한 여름 냄새가 기억에 남아서일 것이다.

미국이란 나라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이상하게 가고 싶은 여행지는 미국의 구석 구석 뜬금없는 곳에 많다. 아무래도 영화의 영향 때문이겠지. 얼른 길 위에 서고 싶고 글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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