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
심야 영화로 <블랙 스완> 봤다. 옆집 사는 올케 언니와 단둘이.
남편들은 각자 자는 애들 보라 하고 심야 표를 끊어 나갔다.
ornus가 애들 볼 때 혼자서 얼마든지 영화를 보러 갈 순 있겠지만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같이 보고 나와서 수다 떨 상대가 필요하기에 혼자 영화 보러 가고 싶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방법이 있다는 걸 왜 그동안 생각 못했지. 이제 종종 여자들끼리 영화 보러 나가야 겠다.
(그래도 난 ornus랑 영화 볼 때가 제일 재밌는데 한 사람은 애들을 맡아야 하니 우리 둘이 영화를 볼 수 있는 날은 몇 년 후에 올지 모르겠다ㅠ.ㅠ)
1. 영화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분명히 후반부인데
난 뜬금없이 나탈리 포트먼의 다리가 클로즈업되는 발레하는 첫장면부터 눈물이 났다.
애 둘 놔두고 백조처럼 날아가버리고 싶은 갓 출산한 애엄마의 무의식이 분출된 것인가. 으허허.
알다시피 <백조의 호수>에서 주역을 맡은 무용수는 전혀 다른 캐릭터를 가진 백조와 흑조의 양면성을 혼자서 모두 연기해야 한다. 영화는 순결하고 깨질듯하고 소녀적인 백조는 잘 표현하지만 유혹적이고 섹시하고 음탕하고 어두운 흑조 연기에 약점이 있는 주인공 나탈리포트먼이 겪는 심리적인 강박증을 극단까지 끌어올린다.
공주들이 나와서 산들거리는 발레의 아름다움에 주목하는 게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그렇고 심리적으로도 자신을 끊임없이 몰아붙여야 하는 발레리나의 신경증적이고 분열적인 내면에 초점을 맞춘다.
줄거리만 보자면 오히려 진부할 수도 있는 내용이지만 <레퀴엠>을 연출했던 감독답게 영화적으로 신선한 방식으로 찍어냈다.
(대학교 때 시네코아에서 정미와 함께 마약중독자들이 마약을 통해 겪는 환각을 영화적으로 소름끼치게 시각화한 <레퀴엠>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스릴러적인 부분도 있기 때문에 끝날 때까지 긴장하게 하고 피곤하게 만드는데 몰입해서 보다가 나까지 신경증이 생길 것 같은 무렵에 영화는 끝이 난다.
2. 영화가 끝나고 난 뒤
극장 안에 불이 켜지고 나선 거리는 새벽 두 시 반.
집에 와 보니 자던 열음이가 편도선이 아파서 잠이 깬 바람에 ornus가 달래주느라 거실에 나와 있고 은율이는 뒤척이며 낑낑거리고 있다. 다시 엄마로 돌아오는 순간.
백조와 흑조를 번갈아 연기하며 분열증을 겪는 발레리나만은 못하겠지만 내게도 삶은 일면 분열적인 측면이 있다.
한 쪽의 나는 컨트롤되기 싫고 흔들리고 싶을 때가 있으며 정서의 낙차가 큰 순간에 놓일 때가 있지만
엄마인 나는 정돈되고 정갈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해야 하고 매일 그들을 먹이며 정서의 결을 일관성있게 유지해야 한다. 누군들 조금씩이라도 분열적인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싶지만.
아이가 없었을 때의 나의 삶도 물론 현실에 맞닿아 있기에 둘 사이의 균형이 어느 정도는 필요했지만 아이를 키우는 지금과는 그 균형이 요구하는 무게감을 비교할 수가 없다.
내겐 이 양쪽의 나를 균형잡는 법을 배워가며 고통을 겪으며 다듬어져가는 지금의 나날들이 수도하는 과정처럼 느껴진다.
알다시피 수도는 쉽지 않다.
수도를 통해 얻는 경지는 값진 것일 테지만 사실은 내 안에 있어 나를 흔들던 원초적인 에너지들을 앗아가기도 한다.
이렇게 생각하니 스산하고 쓰라릴 때가 있다.
어렸을 때 삶이란 뜨거운 것인 줄로만 알았다. 이제 살아가는 일이란 어느만큼 스산한 일이라는 걸 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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