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기다린다

열음이도 보고 싶고 가족과 함께 있는게 좋아서 결국 예정보다 일찍 집에 돌아왔다.

1.
모유수유를 못하게 됐다.
모유가 거의 나오질 않고 도는 느낌도 없다.
은율이는 태어나고 그동안 모유를 거의 못 먹은 걸로 봐도 무방하다.
모유량 늘리는 음식, 영양제, 스틸티 등 많은 것들을 알아봤고 노력했지만 상황이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은율이 배고플 때 내가 모유만 들이대면 입을 꽉 다물고 반대방향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러다 분유를 주면 옳다구나!! 하고 신나서 쪽쪽 빨아댄다.

모유수유 전문가분께 맛사지도 받아보고 상담도 해보고 소아과와 내과 의사선생님 두 분과 상담을 했는데
그냥 맘 편하게 분유로 키우기로 했다.
내 정신이 뾰족했으면 또 “아.. 왜 나한테는 쉬운일이 없는 것인가..” 하며 스트레스받을 뻔 했지만
둘째라 그런지 맘에 여유가 생겨서 그런지 그냥 모든 게 다 괜찮다.
없으면 딴 거 먹음 되지. 우리 열음이도 분유만 먹고도 잘 컸는 걸 뭐.. 하고 말게 된다.
다만 밖에 나갈 때 무거운 보온병 들고 나가야 하고, 젖병 닦는 게 좀 귀찮다는 게 걸리긴 한다. 하하
난 내 육체를 보며 생각한다. 이런 저런 일들을 돌아보면 내몸은 역시 임신과 출산에 적합한 몸이 아닌 것 같은데, 은율이가 평범하게 건강하게 태어난 것만으로도 그저 기적 같다. 충분히 고맙다.

2.
ornus랑 열심히 준비하던 일, 자격도 만들었고 우린 부족한 게 없는데 어이 없게 준비했던 제도가 변경돼버렸다. 일단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리는 것 아니면 더 어려운 다른 과정에 도전하는 거다.
그래도.. 이상하게 기분이 그냥 다 괜찮다.
ornus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보니 “삶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아니라 문제와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는 과정”이라고 써놨더라. 그런 것 같다.
법정 스님은 “세상살이에 어려움이 있다고 달아나서는 안 된다. 그 어려움을 통해 그걸 딛고 일어서라는 새로운 창의력, 의지력을 키우라는 우주의 소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쓰셨다.
괜찮다. 새로운 힘, 새로운 의지, 새로운 에너지를 가지라는 소식으로 받아들여야 겠다.

3.
2010년 한 해는 임신으로 인한 육체의 고통에 집중하느라 다른 기억이 별로 없이 지나간 것 같다.
겨울이 오고 바깥날씨는 그렇게 춥다는데 나는 산후조리 중이니 창문으로 눈내리는 풍경만 보고 있다.
봄을 기다린다. 봄이 오는 걸.. 간절히, 이렇게 기대하는 맘으로 기다리는 하루하루가 설렌다.
기다릴 나날들이 있다는 게 어쩐지 그냥 뭉클하다.
2011년엔 두 아이들과 함께 조금 어렵겠지만 새로운 일과 삶의 모습에 도전해볼 것이다.
더 바쁘게 살아야겠지만 기다리는 지금 이 시간들이 짜릿하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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