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안 온다

이제 37주를 향해 달려가는 중이다. 39주 쯤 은율이를 낳았으면 좋겠다.
언젠가부턴 밤 12시 전에 잠들면 꼭 새벽 서너시에 다시 잠이 깨서 잠이 오지 않는다.
나만 이런가 싶어 네이버 모 유명 임산부카페에 들어가보면 나처럼 수면주기 바뀐 상태에서 불면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아 안심이 된다.

이상하게 오프라인에선 다들 속내를 잘 안비춰서 그런지 그렇게 많이 힘들어하는 임산부를 못 봤다.
그래서 오프에선 힘든척을 잘 못하겠는데 온라인에선 맘놓고 힘든척을 할 수 있으니 좋다.

여기 저기 쑤시고 관절은 우두둑 소리가 나고 배는 벽돌처럼 딱딱하게 뭉치고 무거우니 일어서면 허리가 아파 걷기가 힘들다. 가진통은 하루에 서너번씩 찾아오고. 가진통은 임신 말기에 오는 건데 나는 7개월 때부터 와서 조산기로 걱정을 좀 했다. 이젠 안심이다.
가진통이 찾아올 때마다 진통 상황이라고 가정하고 ornus랑 함께 호흡조절 연습을 한다. 그래봤자 가진통은 진진통의 고통에 비해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니 절망이다.

막달이 되면 아가가 세상으로 나올 준비를 하기 때문에 배 윗부분에 있던 아가 엉덩이가 밑으로 쑥 내려간다.(모든 산모에게 이런 현상이 있는 건 아니란다)
임신 내내 한 번도 안 했던 걸레질을 며칠 전에 열음이랑 단둘이 있을 때 열음이가 바닥에 토하는 바람에 한 10분 했는데 그 10분 걸레질 후 은율이가 자궁 아랫부분으로 쑥 내려가버렸다.
쑤욱 내려가는 느낌까지 세세히 느껴지고 그 이후로 은율인 배꼽 아랫부분에서 엉덩이를 움직이고 있다. 얘가 아래에 매달려 있으니 걷기가 영… 난감하다.
아가 나올 준비는 골반에서도 하기 때문에 골반이 벌어지는 느낌이 나고 관절이 욱신거리기 시작한다.
출산할 때 뼈마디가 벌어지는 거야 상식으로 알고 있었지만 출산 전에도 뼈마디가 서서히 벌어진다는 것도 이렇게 경험을 해보고서야 알았다.

그래도 이런 종류의 아픔은 뭐 그냥 그럭저럭 견딜만하다. 젤 고통스러운 건 토하기 직전의 소화불량 상태다.
봄부터 겨울까지 4계절을 항상 급체한 것만 같은 상태로 지내니 내 인내심은 한계상황에 와 있다. ㅠ.ㅠ
하루 종일 그럭저럭 견디다가도 ornus가 돌아오면 인내심이 임계치가 되는지 무너져내리고 만다. 누군가 한 명은 이 한계상황을 받아줘야 나도 살 수가 있는 거다. 물론 그 사람은 오직 ornus일 수밖에 없다.
척척 받아주는 너그러운 ornus지만 그도 사람인데 어찌 힘이 들지 않겠는가. 그래서 제정신일 땐 그에게 되도록이면 이쁜짓-.- 많이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허허

이런 증상에 대해서도 역시 그 모 유명 임산부카페에 들어가면 나보다 더 힘든사람이 많아서 위로가 된다.
그런데 왜 오프라인에선 다들 임신해도 별 일 없는 것처럼 다니는 걸까.
왜 사람들은 이런 세세한 문제에 대해선 아무도 말해주지 않은 걸까.
그동안은 임신이란 게 내 일이 아니고 남의 일이라고 생각해서 그랬는지, 이런 세세한 고통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사람은 자신이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해 둔감하기 마련이고 그 둔감함으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무심코 상처를 줄 수 있다. 그렇게 때문에 항상 마음가짐과 말 한마디 한마디를 조심해야 하는 건가 싶다.
임산부의 고통을 몰랐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무심코 했던 행동이 혹시라도 그들을 배려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경험 아니고는 성장할 수 없는 걸까.
자신이 경험해보지 않은 다른 일들에 대해서도 역지사지하는 마음이 들어 타인에 대한 배려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그런 경지에는 언제쯤 도달할 수 있는 걸까. 또 이런 생각에 빠져 있다-.-

은율아 은율아 되도록 빨리 널 밖으로 낳고 싶은 맘이지만 그래도 나 편하자고 널 12월말생으로 만들 수는 없으니 1월 1일까지만 잘 참았다가 1월 초에 보자.
엄만 정말 한계에 다달아 있단다. 얼른 너를 밖에서 보고 싶은 마음뿐이야 정말..

내년 4월, 5월이 돼서 꽃 피고 날씨 화사해지면
열음이랑 은율이랑 커플 스카프 둘러주고 서울성 놀러가서 풀밭에서 딩굴딩굴 놀고 싶다는 상상을 한다.
열음아, 은율이가 밖에 나오면 열음이 뭐할 거야? 하고 물어보면
“으응.. 은율이 태어나면(이런 어려운 단어 쓸 때마다 이뻐 죽겠다).. 내가 장난감 줄거야.. 어린이집에 내가 데꾸 같이 갈거야

ㅎㅎ 사실 장난감 주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한창 소유에 집착하고 있는 열음이 개월수에 다른 이에게 자신이 분신처럼 생각하는 자동차와 기차를(!!!!) 선뜻 내준다는 건 말처럼 되는 일이 아니다. 말은 말이고 행동은 안 되는 거다. 애를 키워보고서야 알았다. 

열음아- 자동차 빌려주란 말은 안 할게.. 근데 어린이집 데리고 간다는 말은 정말 고맙다.
그래 은율아 얼른 얼른 커서 형 손 잡고 어린이집 가라. 그런게 효도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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