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이후 몽롱

추석연휴를 보내고 나니 오늘 내내 정신이 몽롱하다. 밀린 일은 산더민데 온몸이 쑤시고 아프고.

이번 추석은 조용한듯 파란만장했다.
그중에서도 으뜸은 ‘유기견 구출대작전’.

1.
시누(이런말 어색. ornus 여동생) 차를 타고 ornus랑 셋이 우리 친정집으로 향하는데 길 한복판에 시추
한마리가 꼼짝않고 앉아있는 것이었다.
차가 자신을 밟고 지나가도 절대 피하지 않겠다는 무심한 태도를 하고선
우리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이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한참후에 식구들이랑 같이 차 타고 드라이브나 할겸 나왔는데 우리집 바로옆에
아까 그 이쁜이가 누워있는게 아닌가.
자세히 가서 살펴보니 털에 구정물이 잔뜩 묻어 있는게 한 열흘 쯤 된것 같았고,
밥을 몇날이나 굶었는지 허리에 가죽만 남아 있었다.
강아지라면 환장하는 남동생을 따돌려 엄마 아빠와 함께 대책회의를 하던중에 그만 들키고 말았다.
남동생이 강아지를 본 순간 강아지는 우리식구가 되었다.

일단은 추석연휴에 문을 연 동물병원을 찾아 각종 주사를 맞히고 영양제를 맞히고
하루 요양시킨 후에 목욕 시키고 밥주고 안아주고 쓰다듬어주고 혹시 어디 아픈데는 없을까
가족들 전부가 난리였다. 잠도 못 자고 얘 상태 살피느라 연휴 내내 피곤했다.
엄마가 나보고 키우는 건 어떠냐고 하셔서 ornus랑 둘이 잠깐이나마 꿈에 부풀어 있었으나
남동생을 이길 순 없었다.

2.
시댁에 가면 나는 수다를 많이 떠느라 힘이 든다.
다들 과묵한 편이라 왠지 내가 분위기를 띄워야 할 것 같다는 압박감.. 하하하하
당연한 일이겠지만 ornus의 가족들은 예전의 그의 모습과 많이 비슷하다.
속내를 내비치지 않아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는 그 뚱함.
ornus는 나랑 붙어다닌지 10년이 되어 예전 모습이 거의 없어졌지만.
이번 추석엔 시아버님과 대화를 많이 나누게 돼서 좋았다.
ornus는 기억이 안 난다는 네다섯살 어린 시절 얘기도 많이 들었는데 어찌나 가여운 아이였는지.
본인은 기억이 안 난다는 말만 하고. ㅎㅎㅎ

3.
새벽 세 시에 집에 들어와 잠이 들고 나니 오늘 하루는 완전 몽롱하다.
정말 쑤시고 아프다. 일도 안했는데 왜 이렇게 쑤셔.

4.
우리 추석이(강아지 가명;;)가 자꾸 눈에 어른거린다.
안아주면 계속 더 안아달라고 자는척하고 죽은척하고
아직 몸이 회복되지 않아서 비실비실한데 그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너무나 사랑스럽다.
하물며 강아지 한마리도 내 가슴에 들어와 이토록 나를 힘들게 하는데
아기 낳고 떨어져 키우는 사람들 정말 대단한 것 같다.ㅠ.ㅠ

Comments on this post

No comments.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Trackbacks and Pingbacks on this post

No trackbacks.

TrackBack UR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