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엄마들을 보다가 문득

 

아이가 있는 엄마들은 종종 자신들의 실제 나이보다 아이들의 나이로 말해지곤 한다.
서른 살이어도 6살 짜리 아이가 있으면 서른 다섯이라도 한 살 짜리 아이가 있는 엄마보다 선배가 된다.
11살 짜리 아이를 키우고 있는 서른 아홉 살 여자의 2000년도는, 자신이 서른 세 살이었던 해가 아니라 아이가 다섯 살이었던 해로 기억된다. 
요즘 알고 지내는 쌍둥이 아이의 엄마인 그녀에게, 몇 년 전에 개봉한 영화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가  이런 대답을 들었다.

“아이 낳고 지난 3년 간은 내 삶의 블랙홀이야.. 그동안 무슨 영화가 개봉했는지 어떤 배우가 인기가 있었는지 난 전혀 몰라..”

24시간 두 아이와 붙어 지내며 그들을 돌봐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한 무게를 갖는 건지 경험해보지 않은 나도 상상이 간다. 저 대답을 들으며 순간 아찔하고 짠한 기분이 스쳐갔지만, 인형 같이 예쁜 쌍둥이들의 웃음을 보면 그렇게만 생각하는 것은 실례다. 저 보석 같은 웃음을 가진 아이들 때문에 지나간 블랙홀 같은 시간들은, 내가 경험해보지 않은 전혀 다른 인생의 소중한 지점일거다.

그러니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훌륭한 부모가 되기 위한 그런 준비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집중돼 있는 신경을 다른 존재에게로 충만하게 향할 수 있는 그런 준비 말이다. 스물 아홉의 나, 서른 세 살의 나가 아니라 몇 살 아이를 가진, 누구의 엄마로 불려지는 삶을 받아들일 그런 준비 말이다.

하루에도 열두번씩 이런 저런 생각이 움찔거렸다가 사라졌다가 한다.
내년에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되는 그와 함께 어디론가 떠나자는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세계 여행을 꿈꾸기도 한다.
적어도 얼마간은 ‘무엇무엇이 되기 위한 누구’가 아니라 ‘그저 현재를 즐기고 현재 쳐다보는 것들에만 충실한 나’로 살아보고 싶다.

내 감성은 유치하고 유약해서 밤에 본 영화 한 편에 새벽에 읽은 책 한 권에 쉽게 동요가 되어 아무 책임도 없는 그런 공간에 떠나가 앉아 있기도 하고, 때로는 무거운 책임이 담긴 미래를 계획하는 성실한 계획자가 되기도 한다.

이제는 스무살이 아니라서 그런지, 그 어떤 자유와 일탈도 어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밑거름이 되지 않으면 가치 없는 허망한 순간이 될 뿐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도 하다.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나다. 지금 우울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만 있고, 지금 무언가가 먹고 싶으면 비바람을 뚫고서라도 버스를 타고 나가 꼭 사먹고, 지금 보고 싶으면 지금 봐야 행복하다.
그러니 내년에도 나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거다. 고민 속에서도 하고 싶은 일은 하게 될거다.
그저 작은 일에도 웃을 수만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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