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라, 여승
수라(修羅) – 백석 –
거미새끼하나 방바닥에 날인 것을 나는 아무 생각없이 문밖으로 쓸어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어디엔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벌이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적은 새끼거미가 이번엔 큰거미 없서진 곳으로 와서 아물걸인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어나 벌이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이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또 문밖으로 벌이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맞나기나 했으면 좋으렸만하고 슬퍼한다
여승 – 백석 –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느 산(山) 깊은 금점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수능시험 모의고사를 보던 시절이 좋았다면 그건 언어영역 지문에 등장한 시들과 소설들 때문이었다.
아직 세상의 쓸쓸함과 헛헛함을 모르던 고딩의 가슴을 물들이던 글들.
나는 5분이고 10분이고 문제 푸는 것은 잊은 채 문제지에 코를 박고 뭔지 모를 그런 감정이 싸악 스쳐가는 걸 견디곤 했다.
이 시를 다시 읽으니 그 때의 그 싸하던 감정이 다시 스쳐간다.
아이고 내 가슴에 이런 달달함이 있어서 때가 되면 슬며시 일어나기도 하는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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