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지난주 토요일부터 이번 주말 추석연휴가 끝날 때까지 부모님과 함께 가평에서 보내고 있다.
스무 살 이후, 집에서 이렇게 많은 시간을 보낸 적이 아마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엄마랑 슬슬 시골길 산책도 하고, 엄마가 취미삼아 돌보고 계시는 작은 밭에서 배추며 열무가 자라는 모습도 보다가,
옥상 위에 엄마가 직접 따서 말리고 있는 빨갛고 말간 고추들이 널어져 있는걸 쳐다보기도 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밤이 되면, 아빠랑 엄마랑 함께 공설운동장에 올라가 그 넒은 트랙을 여덟바퀴나 달리고 있다.
엄마랑 아빠는 나잇살 뱃살을 좀 빼보시려 열심이시고, 나는 뛰는건 질색이지만 두 분 곁에서 수다를 떨기 위해 헥헥거리며 겨우 따라다니고 있다.
집 문을 열면 싸하고 상쾌한 공기가 훅 끼쳐오고, 고개를 조금만 들면 노랗고 파란 풀들이며 나무며 산이 보이는 곳.
서울의 우리집 앞에서 숨을 들이마시면 내 폐를 죽이는 썩은 냄새만이 입으로 쑥 들어올 뿐.
나는 자꾸만 귀농의 꿈;;을 꾼다.
숨막히게 들어선 높은 건물과 볼품없는 아파트, 차들이 뿜어대는 무례한 매연이 진저리난다.
어제는 드디어 육군훈련소 홈페이지 ‘보고싶은얼굴’ 창에서 29연대의 사진들을 전부 열어보았다.
매번 창을 열 때마다 ornus의 얼굴이 어딘가 있을 거란 상상에 설레는거다.
하지만 정작 그가 속한 4중대 2소대의 창을 열고 그를 놓쳤다. 옆에 있던 엄마만 그를 알아보았다.
여러 남자들과 똑같은 군복을 입은 채로 서 있으니, 작은 얼굴이 더 작아보여서 얼른 눈에 띄질 않았다.
갈 때도 머릴 자르고 갔는데 훈련소 안에서 완전 박박 잘렸나보다. 그렇게 짧은 머리는 처음 봤다.
환하게 웃고 있어 기분이 좋았다. 저렇게 얼굴이 보이는데 아무것도 할수없이 바라만 봐야한다니.
아버님 댁에 들러 훈련소 사진 얘기를 드리고, 인터넷을 못 하시니 우리집에 모시고 와서 사진을 보여드렸다.
훈련소 게시판에 글도 써드릴 테니까 편지를 적어오세요, 하니 기분이 좋으셔서 그러마 대답하신다.
집에 내려온 지 삼일이 지났다.
사실 아무리 그리웠던 엄마 아빠라도 삼일 이상을 함께 보내기 시작하면 슬슬 싸우기 시작하는게 보통이다.
이번엔 절대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 또 노력하며 두 분 맘 편하게 해드리려고 애교쟁이가 되어 있다.
일주일 효녀가 되어 보자, 진심으로 노력하고 있다.
이렇게 추석연휴가 끝나면 3주만.. 스무날만 혼자 잘 지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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