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우물

토요일 오후.
집에 하루 종일 있으면 팔다리가 축축 늘어진다는 ornus의 말에 우린 습관처럼 집을 나와
강남교보의 구석진 서가 앞에서 책을 들고 앉아 있었다.
내 손에 들려진 책은, 요즘 들어 자꾸 손이 가는 오정희나 신경숙이나 김영하의 소설이 아니라
독일의 한 30대 여자가 쓴, 별거 없어보이는 그냥 그런 얇은 에세이집이었다.
웃기기도 하고 적당히 재밌기도 한 이 얇은 책 안에서, 서른을 앞둔 독일의 여자들도 한국의 여자들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어릴 적 품었던 말랑말랑한 것들을 야금야금 앗아간 실망스런 직장생활로 인하여.
생을 함께할 동반자를 만나 결혼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으로 인하여.
삼십 여 년을 살고도 뚜렷이 그려지지 않는 자신들의 생과 꿈으로 인하여.
그리고 이 모든 희미한 것들 한가운데서 맥없이 흔들리는 와중에도 ‘생물학적 나이에 따르자면’ 수년 안에 출산을 해야 한다는 그 경악스러운 압박감으로 인하여.

야 유럽의 니들도 다르지 않구나?. 쳇.

집을 나서 교보로 오기 전 낮에 나는, 한동네에 사는 친구;와 통화를 하다가 괜시리 문득 울컥하는 기분이 올라와
잠시 동안 머뭇거려야 했다.
아마도 때때로 툭 불거져나오는, 세상에 대한 열패감 때문이었을 거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멋적기도 하여 전화를 끊고 친구를 집으로 불러 ornus랑 셋이서 한두시간 수다를 떨었다.
언제나처럼 불안이나 힘에 부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고, 짧은 격려를 나누기도 했다.

ornus가 몇 권의 책을 더 찾아보겠다고 다른 서가로 간 사이, 나는 쉽게 읽히는 이 책의 거의 뒷부분을 읽고 있었다.
때마침 그녀가 쓰고 있는 비유가 참으로 재치있게 느껴져 킥킥 하고 웃음이 나왔다.
몇 권의 책을 찾아 돌아온 ornus가 “뭔데? 무슨 내용인데 웃었어?” 하고 묻길래 고개를 돌려 대답을 하다가 그만 또 괜시리 울컥 뭔가가 올라온다.
요즈음의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는 터여서, 그는 내옆에 다가와 앉으며 말했다.
“일단 지금은 자기가 하고싶은 게 무엇인지만 생각해. 그랬으면 좋겠어.”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게 무언지는 참으로 알기 어려운 일이지만
적어도 ‘지금’ 내가 하고 싶은건 아주 사적이고 내밀한 것들이다.
나는 바깥 세상에 의미와 생산을 만들어내는 어떤 일도 잊고 싶다. 지금은.
지난 몇 년 간 제대로 하지 못했던 탓에 허기가 져 있는, 책을 향한 욕망들도 맘껏 누렸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달려간다. 달려가는 사람들 틈에서 나는 자주 툭툭 배어져 나오는 삐죽한 생각들로 인해, 종종 멍해졌었다.
나는 지금 달리고 싶지 않고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
내게 있는 옛우물을 들여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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