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빠진다..Let Down. Let Down. Let Down

점점 나른해진다. 힘이 빠지는 몸을 근근히 움직이면서라도, 그래도 살 만은 하다.
그렇지만 어딘가 또 어쩔 수 없는 미끄덩한 웅덩이 속으로 저벅저벅 걸어들어가고 있다는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드디어 빠진다. 내려간다. 빼도 박도 할 수 없는 여기는 밑바닥이다. 내 밑바닥.

방향을 알 수 없이 산발적으로 흩어지던 나의 분노가 한 곳에 모인다.
모든 분노가 한 곳에 모이면, 더이상 분노하지 않게 된다. 분노하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 무서운 일이다.
철저한 무기력. 발끝 하나, 손끝 하나 까딱할 수 없을 것 같은 무기력함.

여기는 내 밑바닥.
내 비열하고 세속적인 욕망이 잔인하게 까발려지는 곳.
내가 꿈꾸던 희미하지만 아들다운 모든 꿈들도 다 구질구질해지는 곳.
이것도 저것도 아무것도 나는 결코 가질 수 없을 것이라는 철저한 절망.
나는 아무것도, 그 무엇도 아니라는 절망.
세상은 내 모든 의지와는 상관없이 제멋대로 흘러갈 뿐이라는 배신감.
내 몸에 붙어 있는 모든 기운들이 철저히 내 자존감을 무너뜨리기 위해 존재한다고 느끼는 순간.

이쯤되면 물러설 수가 없다. 나는 그저 더 많이 무너진다. 어떻게 해서든 ‘나는 가치 있는 존재’라는 최후의 믿음만은 붙들고 싶은 욕망을 갖는 일은 이순간 가장 어리석은 태도이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는 아무것도 꿈꾸지 못할, 형편없는 존재라는 걸 받아들이는 편이 옳다. 그걸 인정하면 더 내려갈 곳이 없으니 두렵지 않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비열한 거짓을 동원해서라도 한가닥의 자존감만은 지키고 싶어하는 불쌍한 존재이므로, 쉽지는 않다. 될 수 있는 한 가장 구질구질하고 가장 추한 모습으로 넘어져야만 밑바닥으로 갈 수 있다.

이상하지만 그리고 나서야 밑바닥을 건너가고 있는 내가 보인다.
이 밑바닥을 건너간다고 해서 뭐 대단한 것을 얻는 것은 아니다.
단지, 저기 내 앞에 선 지하철에 발을 들여놓아도 될 만큼의 용기가 생기는 것이다.
그뿐이다. 그렇지만 그것으로 충분하다.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한없이 가볍고 단순한 희망을 한 줌이라도 얻으려면, 손에 아무것도 쥐지 않은 채 출발하면 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Let down..and hanging around..
crushed like a bug in the ground.. 

 

* 음악 – Radiohead, Let Down
.

.

그리고 이 모든 패배주의를 위한 자위기구에서 뚝뚝 떨어지는 끈적한 체액을 핥아보면
언제나 그래도 삶이란 맛을 알 수 없는 미묘한 무엇.
무엇을 위한 그 모든 패배와 부정이었는지 알고 싶다면.
네가 어디쯤 떨어져 있는지 알고 있다면.
가장 높은 것은 가장 깊은 것으로부터 그 높이에 도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 Nietzs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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