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지마, 죽지마, 소통할거야

소통(communication)이 엇나가고 미끄러지는 순간들을 섬세하게 포착하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Lost in Translation)] 같은 영화에 열광하는 나이지만, 나는 근본적으로 ‘소통주의자;’다. 물론 오해할 필요는 없다.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는 ‘소통의 어그러짐’을 찬양하는 영화가 아니다. 소통이 어그러지는 현실을 기가막히게 포착해서 보여주고, 그 어그러진 소통을 바로잡을 의지가 없는 무심한 일상인들이 주는 상처와 피곤함’에 대해 말하는 영화다. 그러니 이 영화도 근본적으로는 소통에 대한 열망을 담은 영화라고 나는 생각한다.

소통하기 위해서 일단은 현실과 대면해야 한다. 사실 사람들은 현실과 대면하는 것을 싫어한다(어쩌면 두려워한다). 그래서 구차하고 짜증나는 잔인한 현실을 외면하고, 얄팍한 환타지 안에 머문다.

예컨대 내 생각에, 대개의 가정들이 진심을 교감하지 못하는 불행한 상태에 머무는 이유는, 사람들이 가정에 대해 얄팍한 환타지를 상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화같은 스위트홈’ 환타지는 매우 얄팍하다. 가짜다. 이것이 가짜인 이유는 실제 가정들은 결코 달콤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스위트홈 환타지가 소통’을 거세한 나약한 환타지이기 때문이다. 나약한 사람들은, 질퍽한 현실에 발을 담그지 않고, 너와 나의 입장들에 귀기울이지 않고, 우리가 화나게 된 ‘진짜 이유’를 파헤치지 않으면서, 우리 가정은 불행하다고 말한다. 왜 우리 가정은 스위트홈이 되지 않았을까 의아해한다. 바보. 당신들이 꿈꾸는 스위트홈은 ‘진짜 현실’과 맞닥뜨려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소통에 대한 용기 없이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텐데 말이다.

“사랑해”, “응 자기야 나도 사랑해” 이런 이쁜 말을 연발하다가, 어느 즈음에는 둘 사이에 산적한 문제들이 더 이상 해결할 수 없을 만큼 쌓여서 결국 헤어지고 마는 연인들이 있다.

당신이 사랑하는 그녀는 ‘언제나 잘 풀리는 현실 속에서, 언제나 환하게 웃어주여, 언제나 이쁜 모습만을 보여주는 인형’이 아닌데 말이다. 그녀에겐 산적한 일거리가 있고, 냄새나는 발바닥이 있으며, 오늘 당신에게 웃지 못하고 화낼 수밖에 없었던 ‘진짜 이유’가 있는데 말이다.
당신이 사랑하는 그남자는 ‘언제나 어깨를 내주고, 언제나 용감하며, 언제나 멋진 백마탄 기사’가 아닌데 말이다.  그에겐 고단한 현실이 있고, 풀어야 할 문제들이 있으며, 지치고 초라한 뒷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던 진짜 이유가 있는데 말이다. 그 ‘진짜 이유’들을 서로에게 털어놓고, 서로의 현실문제들을 정직하게 대면하면서 하나하나 소통하다 보면, 문제는 의외로 간단하게 풀리는데 말이다.

민망하지만(^^), 우리가 7년 째 재밌는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진짜 이유’들을 털어놓고 소통해왔기 때문에 우리 사이에 감정의 찌꺼기들이 쌓이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뜬금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나는 유영철 연쇄살인 사건을 보면서도 한구석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 우리 사회가 참 나약하구나. 건강한 소통을 하지 못하는구나. 문제가 손톱만큼 작았을 때 소통을 시작했다면, 분노가 그렇게 쌓여서 결국 그렇게 끔찍한 병리현상으로 나타나지 않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물론 이 사건에 얽힌 다른 복잡한 문제들을 단순화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우리에겐 한 인간의 개인적인 노력’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견고한 구조가 있다. 건강하게 소통하자’는 것은 이 견고한 구조를 외면한 채 너와 나의 노력으로 행복해지자’는 순진한 얘기가 아니다. 구조를 피하지말고, 어쩔 수 없이 존재하는 이 구조들을 말랑말랑하게 만들어보자는 말에 가깝다.

나는, 소통이 어그러진다 싶으면 그저 머리에 헤드폰을 끼고 흐물흐물 음악에 몸을 맡기는 자폐적인 청춘’들이 안타깝다. 그게 쿨한 건 줄 아는 그 착각이 안타깝다. 그렇게 흐물거리면서 권태 속에 몸을 맡기다가는 얼어버릴텐데. 죽어버릴텐데.

얼지마, 죽지마, 소통할거야(소통해야쥐-ㅂ-)

*덧붙임 – 영화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 내용이 가물가물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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