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혁 피아노 리사이틀 후기
* 프로그램
1. 쇼팽 – 3개의 마주르카 작품 59 제 1~3번
2. 쇼팽 – 뱃노래 작품 60
3. 쇼팽 – 소나타 제2번 작품 35
4. 슈베르트 – 소나타 D.664
5. 프로코피예프 – 소나타 제7번
비가 추적추적 내렸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새로 산 트렌치코트를 꺼내 입고 스카프까지 맸다.
구두 속으로 스며드는 물냄새를 느끼며 예술의 전당의 시멘트 바닥을 지나는 일도 생각보다 괜찮았다.
콘서트홀 안으로 들어서면서 깜짝 놀랐다. 나와 종남의 자리는 피아노와 너무나 가까운 자리.
소년스러움을 간직한 외모와, 오랜 만에 나타난 피아노계의 신동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연주회장은 중고등학교 소녀팬들로 가득 찼다. 물론 나이 지긋하신 분들도 빠지진 않았다. ^^
소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불이 꺼지고 약간 방심하고 있는 중, 동혁군이 무대의 문을 힘있게 열어 제치며(정말 확! 열어 제치고 들어왔다) 무대 위를 빠르게 걸어, 피아노 앞에 앉았다. 그 짧은 시간에 내가 느낀 건 저 소년 같은 남자의 강한 아우라.
섬세하고 예민한 걸음걸이.
그의 연주는 정말 섬세했다. 그리고 예민했다. 지극한 몰입의 순간.
잘은 모르지만… 몇 번의 연주회와 두 개의 정규앨범에서 유난히 그가 쇼팽에 집착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쇼팽 소나타 2번을 막 끝내고, 힘있게 일어나 객석을 향해 그가 몸을 깊게 숙였다.
인터미션 시간이 시작되자마자 종남이가 밖으로 나가 최근 새로 발매된 씨디를 사갖고 들어왔다.
오늘 연주회가 끝나면 홀 밖에서 싸인회가 있을 거라는 정보와 함께.
프로코피예프는 심한 엇박과 변박, 그리고 빠른 템포가 얽혀 동혁군의 섬세한 기교에 날개를 달아 주었다.
정규 프로그램이 끝나고, 엄청난 박수와 환호와 함께 첫 번째 앵콜곡을 끝낸 후..
계속되는 퇴장과 입장. 그가 문을 열어 젖힐 때마다 객석엔 흥분과 긴장이 감돌았다.
그리고 연주자와 객석 사이의 즐거운 신경전.
오늘의 앵콜은 놀랍게도 네 번까지 이어졌다.
네 번째의 숨가쁜 앵콜곡이 끝났을 때 그는 이제 더는 없다는 뜻으로 피아노 뚜껑을 산뜻하게 닫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인사와 또 인사. 홀은 환호로 가득 찼다.
홀 밖은, 마치 태지가 입국하던 공항처럼 비명과 환호가 섞여 아수라장이 되고 있었다.
내가 망설이는 틈에, 고맙게도 종남이가 재빨리 줄을 섰다. 천여 명은 돼 보이는 싸인줄에 우리가 한 서른 번째 정도였던 것 같다.
싸인을 하면서 이 청년이 두 번 정도 눈을 맞춰주었던 것 같은데
나는 그 해사한 웃음에 놀라면서도 싸인을 하는 그의 손에 집중했다.
아까의 그 놀라운 연주가 정말 저 손에서 나왔던 걸까..
예술의 전당 밖으로 나오니 빗줄기가 상당히 굵어져 있었다.
구두 속에서 발이 아예 첨벙거린다.
가슴 속에선 해사한 웃음을 가진 섬세하고 예민한 연주가 첨벙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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