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안 오는 밤이 아니었다면, ..

오늘도 어김없이, 아니 다른 날과는 다르게 유독 더 필사적으로 노력했는데 안 됐다.

초저녁 아홉 시부터 잠을 청했건만  괴상한 꿈 서너 개 정도 꾸고
가위눌림 비슷한 압박으로 자는 건지 안 자는건지 모르는 세 시간을 보낸 후, 결국 밤 열두시에
침대를 박차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한 시에 다시 누워서 애쓰고 또 애썼지만, 지금은 새벽 세 시…

쉽게 잠이 들 수 있다는 건, 여전히 나에겐 꿈만 같은 일이란 걸 뼈저리게 확인했을 뿐…
살기가 싫어진다. 쳇…

내일도 결국 일찍 일어나지 못할거고 오전에 계획했던 일들은 물거품이 되버렸다..
이대로 밤을 새고 아침일찍 집을 나설까, 아주 잠깐 무모한 생각도 해보지만…
어렸을 땐 밤을 꼴딱 새고도 다음날 살아갈 수 있었는데, 이젠 평소보다 삼십 분만 덜 자도 생활이 완전 망가진다. 점점 갈수록 몸은 약해져만 가고.. 신경은 예민해지고..

둥글게 둥글게, 어디 갔다놔도 별 흔적 없이 살아가는, 그래 원만한 사람들…
건강을 생각할 때면 그런 사람들이 부러워진다.

쓸데없이 예민한 정신, 그보다 더 심약한 육체, 한때는 갖다버리고 싶었다..

내몸에 붙어있는 온갖 이상한 징후들의 이유를 알기 위해 병원에 가보는 수고도 간혹 해 봤지만,
하얀 가운 입은 그 사람들, 이유를 모른 채 그저 하는 말이라곤

“신경성이에요, 신경성…”

‘신경성’이라는 말은 ,

“당신도 노력해 봤겠지만, 우리도 어쩔 수 없네요. 그렇게 태어난 이상, 그냥 그렇게 살아가세요”

하는 잔인한 말로 들린다.

한 예닐곱 살쯤 되었을 무렵이었을까..
뭐든 보이는 것보다 열 배쯤은 복잡하고 세밀하게 받아들이는 나 자신을 보며,
‘앞으로 그럭저럭 편안하게 살아가긴 힘들겠구나…’ 뭐 이런 비슷한 생각을 본능적으로 했었던 것 같다.

요즘 들어 밤마다 어린 시절에 관한 흐릿한 꿈을 꾸곤 한다.

잠이 오지 않는 밤만 되면 엄습하는 두려움을 느끼던 일곱살 무렵…
학교 다녀오는 길에 몇몇 아이들과 지나치곤 했던 어둠 가득한 고갯길과 서낭당…

아이들과 어울려 놀면서도, 왠지 모르게 혼자만 삐죽 나와 있는 것 같은 이질감…
쨍한 햇살이 내리쬐는 운동장 한 가운데서 몸 안 가득 허무함이 느껴지는 오후.. 이리저리 뛰어놀며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느꼈던 거리감…

고등학교 때 수업 시간에 선생님 몰래 책상 밑에 숨기고 읽곤 했던 그 책들에 대해서 가끔 생각할 때면,
끔찍하다.
어쩌려고 그 나이에 그 절망 가득하고 어려운, 감당못할 책들에 빠져들었을까…

그런 책들을 읽고나면 빽빽한 책상들 틈에서 불편한 교복을 입고 얌전히 앉아 있는 나 자신에 대해 조소하곤 했었다.
학교로부터 받았던 상처는, 결코 난 이들이 원하는 인간이 될 수 없을거라는 걸 확인하는 일로부터 시작됐다.

아직까지.. 나에게 살아가는 일이란
거리감을 확인하는 일인 것 같다.

온갖 것들과의 ‘거리감’와 ‘이질감’을 확인할 때면, 언제나 아프다.
그리고 놀랍게도 매번 상처가 된다.

그런데 요즘은 가끔 별 생각 없이 한 올의 절망감도 없이 그 ‘거리감’을 익숙하게 맞이하기도 한다.

이제는 익숙해졌구나 살만 하겠다 생각할 무렵, 또다시 어김없이 아픔이 느껴지면, 절망스럽다가도….
어차피 ‘외면하고 싶은 이 모든 것들’과 평생을 같이해야 한다면, 떼어버리려 하지 말고 끌어안아 보자고 다짐해보기도 한다.

어쨌든 내가 견딜 수 있을 만큼만 나에게 붙어 있겠지..
혹여 견딜 수 없게 되는 날이면 그 날은 곧 이미 ‘나’라는 사람이 이 세상에 발붙이고 있지 않을 날일 테니까,
굳이 걱정할 필요 없는 일 아닌가….
이 정도의 낙관적인 자세는 유지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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