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은 포개지지 않는다. 시를 읽는다

선천성 그리움

사람 그리워 당신을 품에 안았더니
당신의 심장은 나의 오른쪽 가슴에서 뛰고
끝내 심장을 포갤 수 없는
우리 선천성 그리움이여
하늘과 땅 사이를
날아오르는 새떼여
내리치는 번개여


몸이 많이 아픈 밤

하늘에 신세 많이 지고 살았습니다
푸른 바다는 상한 눈동자 쾌히 담가주었습니다
산이 늘 정신을 기대어주었습니다
태양은 낙타가 되어 몸을 옮겨주었습니다
흙은 갖은 음식을 차려주었습니다
바람은 귓속 산에 나무를 심어주었습니다
달은 늘 가슴에 어미 피를 순환시켜주었습니다

오염시키지 말자
죄란 말
칼날처럼
섬뜩 빛나야 한다
건성으로 느껴
죄의 날 무뎌질 때
삶은 흔들린다
날을 세워
등이 아닌 날을 대면하여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구분하며 살 수 있게
마음아
무뎌지지 말자
여림만으로 세울 수 있는
강함만으로 지킬 수 있는
죄의 날
빛나게
푸르게
말로만 죄를 느끼지 말자
겁처럼 신성한
죄란 말
오염시키지 말자


공터의 마음  

내 살고 있는 곳에 공터가 있어
비가 오고, 토마토가 왔다 가고
서리가 오고, 고등어가 왔다 가고
눈이 오고, 번개탄이 왔다 가고
꽃소식이 오고, 물미역이 왔다 가고 

당신이 살고 있는 내 마음에도 공터가 있어 

당신 눈동자가 되어 바라보던 서해바다가 출렁이고
당신에게 이름 일러주던 명아주, 개여뀌, 가막사리, 들풀이 푸르고
수목원, 도봉산이 간간이 마음에 단풍 들어
아직은 만선된 당신 그리움에 그래도 살 만하니

세월아 지금 이 공터의 마음 헐지 말아다오

옥탑방

눈이 내렸다
건물의 옥상을 쓸었다
아파트 벼랑에 몸 던진 어느 실직 가장이 떠올랐다

결국
도시에서의 삶이란 벼랑을 쌓아올리는 일
24평 벼랑의 집에서 살기 위해
42층 벼랑의 직장으로 출근하고
좀더 튼튼한 벼랑에 취직하기 위해
새벽부터 도서관에 가고 가다가
속도의 벼랑인 길 위에서 굴러떨어져 죽기도 하며
입지적으로 벼랑을 일으켜 세운
몇몇 사람들이 희망이 되기도 하는

이 도시의 건물들은 지붕이 없다
사각단면으로 잘려나간 것 같은
머리가 없는
벼랑으로 완성된

옥상에서
招魂하듯
흔들리는 언 빨래소리
덜그럭 덜그럭
들리는

자본주의의 약속

혜화동 대학로로 나와요 장미빛 인생 알아요 왜 학림다방 쪽 몰라요 그럼 어디 알아요 파랑새 극장 거기 말고 바탕골소극장 거기는 길바닥에서 기다려야 하니까 들어가서 기다릴 수 있는 곳 아 바로 그 앞 알파포스타칼라나 그 옆 버드하우스 몰라 그럼 대체 어딜 아는 거요 거 간판좀 보고 다니쇼 할 수 없지 그렇다면 오감도 위 옥스퍼드와 슈만과 클라라 사이 골목에 있는 소금창고 겨울나무로부터 봄 나무에로라는 카페 생긴 골목 그러니까 소리창고 쪽으로 샹베르샤유 스카이파크 밑 파리 크라상과 호프 시티 건너편요 또 모른다고 어떻게 다 몰라요 반체제인산가 그럼 지난번 만났던 성대 앞 포트폴리오 어디요 비어 시티 거긴 또 어떻게 알아 좋아요 그럼 비어 시티 OK 비어시티–

감나무 

참 늙어 보인다
하늘 길 가면서도 무슨 생각 그리 많았던가
함부로 곧게 뻗어 올린 가지 하나 없다
멈칫멈칫 구불구불
태양에 대한 치열한 사유에 온몸이 부르터
늙수그레하나 열매는 애초부터 단단하다
떫다
풋생각을 남에게 건네지 않으려는 마음다짐
독하게, 꽃을, 땡감을, 떨구며
지나는 바람에 허튼 말 내지 않고
아니다 싶은 가지는 툭 분질러 버린다
단호한 결단으로 가지를 다스려
영혼이 가벼운 새들마저 둥지를 틀지 못하고
앉아 깃을 쪼며 미련 떨치는 법을 배운다
보라
가을 머리에 인 밝은 열매들
늙은 몸뚱이로 어찌 그리 예쁜를 매다는지
그뿐
눈바람 치면 알몸으로
죽어 버린 듯 묵묵부답 동안거에 드는

 

섬  

물 울타리를 둘렀다
울타리가 낮다
울타리가 모두 길이다

 

뻘밭          
       
부드러움 속엔 집들이 참 많기도 하지
집들이 다 구멍이네
구멍에서 태어난 물들
모여 만든 집들도 다 구멍이네
딱딱한 모시조개 구멍 옆 게 구멍 낙지 구멍
갯지렁이 구멍 그 옆에도 또 구멍구멍구멍
딱딱한 놈들도 부드러운 놈들도
제 몸보다 높은 곳에 집들 지은 놈 하나 없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달빛과 그림자의 경계로 서서
담장을 보았다
집 안과 밖의 경계인 담장에
화분이 있고
꽃의 전생과 내생 사이에 국화가 피었다

저 꽃은 왜 흙의 공중섬에 피어 있을까
해안가 철책에 초병의 귀로 매달린 돌처럼
도둑의 침입을 경보하기 위한 장치인가
내 것과 내 것 아님의 경계를 나눈 자가
행인들에게 시위하는 완곡한 깃발인가
집의 안과 밖이 꽃의 향기를 흠향하려
건배하는 순간인가

눈물이 메말라
달빛과 그림자의 경계로 서지 못하는 날
꽃철책이 시들고
나와 세계의 모든 경계가 무너지리라

우산 속으로도 빗소리는 내린다

우산은 말라가는 가슴 접고 얼마나 비를 기다렸을까
비는, 또 오는 게 아니라 비를 기다리는 누군가를 위해
내린다는 생각을 위하여, 혼자마신 술에 넘쳐
거리로 토해지면 우산속으로도 비는 내린다

정작 술 취하고 싶은 건 내가 아닌 나의 생활인데
비가 와서 더 선명해진 원고지 칸 같은 보도블럭 위를
타인에 떠밀린 탓보단 스스로의 잘못된 보행으로
비틀비틀 내 잘못 써온 생애가

비가오면 우산처럼 가슴 확 펼쳐
사랑한 번 못해본 기억을 끌며
나는 얼마나 더 가슴을 말려야 우산이 될 수 있나
어쩌면 틀렸을지도 모를 질문의 소낙비에 가슴을 적신다

우산처럼 가슴 한번 확 펼쳐보지 못한 생활이
우산처럼 가슴 한번 확 펼쳐보는 사랑을 꿈꾸며
비 내리는 날 낮술에 취해 젖어오는 생각의 발목으로
비가 싫어 우산을 쓴 것이 아닌 사람들 사이를
걷고 또 걸으면 우산 속으로도 비는 내린다

 

나를 위로하며

삐뚤삐뚤 날면서도
꽃송이 찾아 앉는
나비를 보아라
마음아
 

긍정적인 밥

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여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도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 백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시를 읽는다. 함민복의 시를 읽는다.

그는 강화에서 누군가 비워둔 방 한 칸짜리 농가를 빌려 시를 쓰며 살고 있다.

가난은 그에게 존재를 들여다보는 맑은 시력을 선사한다.

소설가 김훈은 그를 가리켜 

“가난과 불우가 그의 생애를 마구 짓밟고 지나가도 몸을 다 내주면서 뒤통수를 긁는 사람”이라고 했단다.

돈과 욕망의 시대. 가난으로 맑아진 시력을 하고 살기란 기적 같은 일이다.

모두가 욕망 이상의 돈을 벌러 가고 욕망 이상의 돈을 벌지 못해 좌절하는 시대, 시인이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것은 기적이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삼백원이 돌아오고 그것이면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라고 말하는 시인의 시를 읽는다.

삼천원 하는 시집 한 권 값이면 사람 가슴 덥여주는 국밥이 한 그릇이라는 시인의 말에,

그렇다면 나는 그의 시를 국밥 세 그릇치만큼은 사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과 사람의 심장은 포개지지 않는다. 선천성 그리움은 사람으로 해결할 일이 아니다.

왼쪽 가슴을 찌르는 듯 물컹하며 지나가는 것은 사람을 향한 그리움이 아니라 원체 그런 것이다.

그냥 거기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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