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좋다

회의나 세미나가 없다면, 고객을 만날 일이 없다면, ornus는 거의 집에서 일한다. 여기 건물 안에 있는 커뮤니티룸이나 스터디룸에서. 일하다가 점심 먹겠다고 올라오면, 가슴이 꽉 차오른다. 좋아서.. 어쩌다 회의가 있다고 출근하는 날에도 회의 시간에 맞춰서 집에서 천천히 나가고 네 시쯤이면 집에 와 아이들과 6층 정원에 나가 “공 차고 올게~” 하는데, “우리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건가” 싶어진다.

지금… 지금이.. 정말 좋다. 그러나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는 성격이라, 혹시 내가 더 할 수 있는 일들을 안 하고 있는 건 아닌지, 혹시 우리 가족이 세상에 할 수 있는 사소한 일이든 작은 일이든 더 있는 건 아닌지, 이렇게 행복해도 행복은 언젠가 새옹지마처럼 다른 일들도 변하는 건 아닌지. 마냥 좋아하기엔 어쩐지 죄스러운 마음이 한쪽에서 고개를 들기도 한다. 이 죄스러운 마음은 어릴 때부터 한국에서 배운 ‘근면, 성실’ 같은 가치들이 우리를 옥죄는 거기도 하고, 한편으론 더 근본적으로 인생이 좋을 때가 있으면 나쁠 때가 있다는 ‘ 알기에 드는 마음이기도 하다.

이런 기우가 어리석다는 걸 안다. 중요한 건 지금 현재고, 미래가 어떠한 일로 바뀐다 할지라도 지금 이 순간 이런 현재가 존재했다는 것은 사라지는 일이 아니란 걸 알기에 이렇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또 다른 종류의 안타까운 마음이 있다. 왜 우리가 한국에서, 한국의 대기업에서, 한국의 중소기업에서.. 이렇게 인간답게 살지 못했는지. 사람이 왜 사는 건지. 결국 행복하고 즐거우려고 사는 건데, 왜 항상 일과 근무시간이 행복보다 더 우선이 되었어야 했는지. 요즘도 젊은 사람들 많이 모이는 인터넷 커뮤니티 가면 야근과 초과근무에 찌들어서 버스 타고 퇴근하며 회의가 몰려오고, 아침에 지각하면 눈치보이고, 아이가 아파서 병원 데리고 가려고 해도 눈치보이고, 어린이집 맡겨놓은 아이 찾으러 7시 전에 들어가야 하는데 눈치보인다는 글들, 자신의 업무 다 끝났는데 상사 눈치보느라 퇴근을 못한다는 글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회의가 밀려온다는 글을 보면, 모두가 반짝반짝 빛나는 삶인데 왜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건지. 왜 아주 가장 기본적이고 인간적인 부분마저 보장받지 못하는지 가슴 한 구석에서 화가 올라온다.

ornus는 페북에서 많은 전 직장동료들과 메세지도 주고받고 연락도 하는데, 이곳에서의 직장생활의 만족감을 솔직히 이야기하지 못하겠다고 한다. 야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 지금 아주 만족한다는 말을 할 수가 없어서. 이곳은 보통 그냥 개발자로 60까지 일하고 싶으면 일하는 문화이기도 하지만, ornus의 경우는 이제 순수 개발자가 아니고 비즈니스와 결합된 일들을 많이 하기 때문에 나이 같은 건 전혀 중요하지가 않다. 그냥 적당히 힘들다고 둘러댄단다. (그 중 진짜로 이쪽에서 일하길 원하는 동료에게는 자세한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물론 우리나라도 공무원, 교사 같은 일들은 정년보장되겠지. 근데 그런 일을 하기 싫은 사람도 많다. 빠르게 움직이는 사기업에서 리드미컬하게 살면서도 나이 들어서까지 이 일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사람들이 왜 40 넘어서 계속 발전하지 못하고 결국 다른 일을 찾아봐야 하는지.

이모든 것들이 대단한 것도 아니고 요란하게 좋은 것도 아니고 그냥 아주 기본적인 거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업무만 알아서 잘 처리한다면 출퇴근 시간엔 아무런 터치도 받지 않고 온전히 본인에게 맡기는 그냥 아주 기본적인 것들. 낮에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는 일에 눈치본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고, 자기 업무는 병원 다녀와서 자기가 집에서 하면 되는 거다. 근무 후 억지로 가야 하는 회식 때문에 눈치본다는 것도 상상할 수도 없다. 회식도 없지만 어쩌다 가끔 상사가 “퇴근하고 같이 해피아워 갖자~” 하면 ” 나 오늘 마누라랑(남편이랑) 약속 있어. 니들끼리 해” 하고 나가는 직원이 훨씬 많고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물론 이러한 유연한 근로문화가 꼭 ‘쉽고 편안한’ 회사생활을 보장하려고 이러는 건 아니다. ornus네 회사 문화는 개인 한 명 한 명을 스타트업의 CEO처럼 자신의 사업을 리드하는 사람으로 여기고 모든 계획과 컨트롤을 스스로에게 맡긴다고 한다. ornus도 출퇴근시간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살지만 자신의 안테나는 항상 일을 향하고 있다. 본인은 그게 잘 맞기 때문에 힘들지 않다고 한다.

 

내가 태어나고 내가 자란 땅에서 이렇게 살 수 있었으면 굳이 먼 땅으로 안 와도 되잖아. 물론 우리가 꼭 더 좋은 삶을 찾아 이곳으로 온 것만은 아니다. 어딜 가도 장단점은 있고 어딜 가든 삶은 그만큼의 무게가 있다. 그보다 더 근본적이건 좋든 나쁘든 여러 경험을 해보고 죽고 싶다는 생각에, 다른 땅도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 없이 오직 이곳의 근로문화 때문에 여기 온 사람들도 많은데, 왜 그 사람들이 내 땅 내 나라를 떠나 이곳으로 와야 했는지… 갑자기 짠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아니다. 이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좋든 나쁘든 이제 세계는 하나의 시장이고 그 안에서 각기 어디에서든 일할 수 있으면 일하고 움직이는 문화가 자리잡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 세대에서는 더하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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