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cctv 그리고

자주 가던 커뮤니티에서 기사를 봤더니, 9월부터 한국의 어린이집에서 실시간 cctv가 의무화된다고 한다. 나도 두 아이들을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몇 년씩 보내본 애엄마니 이 문제에 대해선 관심이 크다. 요즘 계속됐던 어린이집, 유치원 관련 아동학대 사건들 때문에 이런 것 같은데 정말 문제의 근본을 안 고치고 왜 또 저 결론인지. 사고가 나니까 수학여행 금지하겠다는 결론이랑 다를 게 뭔지. (미국에서도 몇몇 프리스쿨에서 실시간 cctv를 설치하는 문제로 논란이 되고 있다.)

의사표현이 힘든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어린이집 특성상 기록욕 cctv는 불가피하다고 본다. 어떤 사건이 터졌을 때 확인해야 하니까 기록용 cctv는 필요하고 지금도 대부분 갖추고 있는 걸로 안다. 다만 실시간 cctv라니.. 이건 어린이집 교사에 대한 인권침해기도 하고 아이에 대한 인권침해기도 한다. 아이들이란 존재의 특성상 같이 있다보면 여러 아이들이 뒹굴대고 부딪치고 하는 곳이 어린이집인데, 이제 옆에 아이가 놀다가 내 아이한테 달려와서 부딪혔거나 조금의 실랑이가 벌어져도 다 논쟁의 씨앗이 될 수 있겠다 싶다. 이렇게 결벽스러운 결정을 만약 찬성하는 부모가 있다면 어린이집 보내지 말고 자기가 키웠어야 한다. 이게 부모들의 결정이 아니라 윗분들의 결정이겠지만. 내가 아는 육아카페의 부모들은 대부분 찬성하지 않는 걸로 보이는데.

누누히 말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건 부모가 일정 기간 몇 년 동안 자기 아이를 스스로 키울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지는 거고. 두 번째는 ‘저녁이 있는 삶’이다. 근본 중의 근본이다. 몇 년 전에 어디선가.. 늦게 퇴근하는 공무원 부모들의 복지를 위해 어린이집을 9시까지 연장근무시키겠다는 기사를 보고 ornus랑 나랑 동시에 소리를 꽥 질렀다. 애들을 9시까지 가둬놓을 게 아니라(이건 학대다) 부모를 저녁 먹기 전에 퇴근시켜야지!!!!!!!!!! 그리고 근로시간의 유연화다.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하고 자신의 업무의 책임을 스스로 지게 한다면 아이 문제 때문에(병원 갈 때나 아플 때 등등) 근무 중 움직여도 되니까 한결 삶의질이 올라갈 거다. 어린이집, 유치원의 경우에는 교사의 질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 오랜 시간의 교육과 실습 등등. 결국 급여도 많이 올라가야 한다.

박봉에 온갖 행정, 서류 잡무에 시달리며 세상에서 가장 돌보기 힘든 까다로운 나이대의 어린이를 맡은 어린이집, 유치원 교사들이 생각나서 가슴이 답답하다. 나는 아이들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내면서 교사에게 어떤 간섭을 하거나 불만을 얘기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일단 선택할 때 신중하게 나와 가치관이 많는 곳으로 선택한 다음에는 무조건 맡겼다. 나의 간섭이 그들의 업무를 가중시킬 거고 그것이 곧 아이들 돌봄의 질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가끔 유치원 상담 갈 때 내가 진심으로 “선생님들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하고 있어요. 가장 어려운 일이구요.” 하면 선생님들이 눈물을 글썽글썽한다.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그랬다.

실시간 cctv라니.. 이런 식이면 좋은 고급인력들은 점점 더 빠져나갈 거고 단기간 훈련으로 쉽게 교사가 된 사람들만 이 열악한 근무여건을 견디게 되겠지. 그리고 자주 빠져나갈 거고. 악순환이다. 아동발달에 따르면 가장 양질의 양육자와 함께 있어야 할 시기가 36개월 이전이고 그 다음이 유아기, 그 다음이 초등학생 시기이다. 중고등학교, 그 이후로 갈수록 양육자나 교사의 영향이 적어지는데, 사회는 어째 덜 중요한 순으로 더 대우해주는지. 어린시절 양육자나 교사의 영향은 아이의 정서발달에 아주 직접적이다. 임상실험 결과를 논문으로 봐도 그렇지만 그냥 키우는 입장에서 봐도 그렇다.

…..덧붙여..

나는 아이가 있는 한 맞벌이가 결코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본다. 둘다 벌고 싶은 집이라면 그래야 하겠지만(우리 역시 그럴 때가 있었고 또 있을 거지만) 그렇지 않은 집에서는 부모 중 한 명은 벌이를 하지 않고도 생계가 돌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는 게 맞다. 인건비가 너무 낮아서 대부분 외벌이로 생활이 힘든 게 문제지. 그 한 명이 남자가 됐든 여자가 됐든 그건 그집 특성에 맞추는 게 자연스러운 사회. (지금처럼 외벌이라면 꼭 여자가 집 담당인 거 말고) 만약 내가 ornus 같은 성향이고 ornus가 나같은 성향을 가졌다면 나는 무조건 내가 나가고 ornus가 아이들을 돌보는 데 동의했을 거다.농경사회처럼 부모가 농사짓고 옆에선 아이들이 놀고 하는 게 가장 이상적인데 이 사회에선 불가능이고.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신자유주의가 일상화될수록 많은 것들이 도구화되지만 아이들이 도구화되는 것도 절정이다. 아이들이 도구화되는 건 사람이 도구화되는 것의 다름 아니다. 아이들은 이 각박하고 먹고 살기 힘든 세상 속 생계유지를 위해 시달리는 부모들이 어딘가에 맡겨놓아야 할 짐처럼 여겨지는 사회가 됐다. 집에서 나같이 아이들을 직접 돌보는 사람은 ‘잉여인간’으로 불리는 사회가 됐고. 얼마씩 돈을 벌어오는 직접적인 생산에 참여하지 않는 모든 노동은 ‘잉여짓’인 세상이 됐다. 그러하니 꽃을 기르고 그림을 그리고 음식을 만들고 음악을 연주하는 일은 얼마나 잉여짓인 세상인지.

 

Comments on this post

  1. 심은하 said on 2015-05-02 at 오전 10:53

    나도 이 주제는 얼집 폭행사건 있고나서 관심을 가져왔는데,
    나도 씨씨티비 설치는 교사 인권침해이고 통제된 환경에서 오히려 좋은 선생이 많이 떠날수 있다는 생각에서 반대의 입장이지만 아이들 인권은 생각치 못했던 부분이네.

    근데 뭐 지금 우리나라 상황에서(좋은 보육교사와 환경을 양성시킬 수 없는 최악의 노동조건 등..) 막말로 애 봐줄 조부모님도 안계시고 돈 없어서 돌때부터 맞벌이해야 하는 부모 입장에선 씨씨티비 설치 찬성하고 싶을거 같기도 하고..
    그러니 보육교사 처우 개선이 우선인데 그게 아직도 먼길이라면 씨씨티비라도 설치하길 바라는 맞벌이 부모(지금 당장 말못하는 아기를 얼집에 보내야하는) 심정이 이해가 안되는건 아니야.
    뭐 근데 이러한 의식수준이 본질이 해결 안되는 악순환의 결과를 낳는거겠지. 상식을 추구하기엔 너무나 각박해진 세상의 악순환.

    어린이집 못 믿어서, 믿을만한 어린이집 못 찾아서 아직도 내가 끼고 키우는 전업의 입장.

    • wisepaper said on 2015-05-02 at 오후 1:35

      맞아요.. 어린이집 보내는 것밖에 해결책이 없는 생계형 맞벌이가 가장 문제에요. 일단 더 근본적인 문제가 한국이 인건비가 너무 낮구요. 우리 대학 졸업할 때 중소기업 초봉 수준이랑 십몇년이 넘은 지금 중소기업 초봉 수준이 거의 같더라구요.. 이러니 맞벌이를 안 하면 아예 생계가 유지되지 못하니까 해야 하는 수준인 경우가 너무 많구요. (뭐 자아실현형 맞벌이는 개인의 선택이니까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니고…)

      씨씨티비는 기록용은 설치하되(지금 아마 거의 다 그러 거에요) 실시간 씨씨티비는 위험할거 같아요. 실시간으로 어린이집에서 뭔 일 일어나는지 쳐다보고 있는 부모도 아마 결벽증 걸릴 겁니다. 애들 울고 부딪치고 떨어진 거 주워먹고 뭐 난리일텐데…

  2. 심은하 said on 2015-05-02 at 오전 11:01

    근디 이런글 개인홈피로 보긴 아깝다. 페북이나 블로그하지..

    • wisepaper said on 2015-05-02 at 오후 1:38

      저도 사실 네이버 같은 브랜드? 블로그를 할까 고민을 했었는데 컨텐츠가 그 쪽으로 올라가는 것도 싫고(ornus도 좀 싫어하고..) 고민끝에 그냥 구석진 개인홈에 남기로 했어요..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지만.. 사실 이름 있는 블로그를 하면 팬질을 재밌게 할 수 있어서 좋은데.. ㅋㅋㅋ 우현이 글 써놓으면 보고 찾아오는 팬들이랑 수다 떨고 놀고 싶은 흑심도 가득한데, 그냥 제가 좋은 블로그 찾아다니면서 같이 노는 걸로 대신하고 있습니다. ㅋㅋ

  3. 엽곰 said on 2015-05-06 at 오전 2:30

    1. ‘꽃을 기르고 그림을 그리고 음식을 만들고 음악을 연주하는 일은 얼마나 잉여짓인 세상인지.’ -> 나 그 짓한 지 1년 넘었어. 내가 진정 능력자인거지?
    2. 예전에 암작가가, 어디서였더라? 페북이었나? 딸 어린이집가서 cctv 실상영 건의했다고 한 걸 보고, 실은 완전 깜놀이었다.. 내가 예전에 직장에서 cctv로 감시대상이 되었다는 걸 알았을 때, 발끝에서 부터 쳐올라오던 그 분노가 떠올랐었지. 공공의 안전과 특수 목적을 위한다는 이유로 길만 나서면 cctv야, 오케이, 그건 이해하자, 근데 왜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을 감시해? 뭐하게? 내 경우는, 어떻게든 꼬투리 잡아서 법적으로 불리한 증거들을 수집하려는 목적이었는데. 회사가 노동자를 부당하게 대한 증거는 어케든 조작, 은폐하고 노동자를 조이는 갖은 수단과 방법은 가리지를 않아. cctv 감시 덕에 10시간 근무하는 내내 선비 자세로 책상 맡에 앉아 흔한 농담 한 마디도 못 나누던 적막한 사무실이 떠오르는구나. 나는 결국 더욱 분개하며 그곳을 떠났고.(뭐 원래 사직을 강요당하고 있었다만.)

    • wisepaper said on 2015-05-06 at 오전 3:46

      1. 니가 진정 능력자. 난 그 다음. ㅋㅋ 근데 농담이 아니라 난 진심으로..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모든 노동이야말로 인간 정신을 진정으로 해방시키는 노동이 아닌가 싶다.. 어떤 노동으로 살까.. 어떻게 살까..

      2.음..그런 글이 있었어?.. 난 나는 안 해도 친구들 페북은 그래도 보는 편인데.. 난 본 기억이 없어서 몰랐네. 흠… 무슨 생각에서였을까..

      실시간 cctv.. 생각만 해도 숨이 막혀오면서 (너의 경험까지 보고 나니)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떠올라서 화딱지가 치미네. 기록용 씨씨티비 있으면 됐지. 선생님들이 감시대상이 된다는 것도 싫고 우리집 아이, 남의집 아이들이 다 실시간 감시대상이 된다는 것도 싫다. 난 어린이집 교사가 초중고대학 다 합쳐서 모든 교사들 중 월급이 가장 많아야 된다고 진지하게 생각하거든. 정서적으로 학생에게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교사니까. 그만큼 질도 높아야 하고 그러려면 당연히 대우도 좋고 보수가 높은 게 첫번째여야 하니까. 지금 완전 박봉에 시달리며 하루 종일 기저귀 찬 애들 여러 명을 동시에 돌보는 그 근무여건은 학대 수준이라고 생각함. 내 자식도 하루 종일 둘 보라 그러면 지쳐서 나가떨어질텐데..

  4. 엽곰 said on 2015-05-07 at 오전 3:32

    어쩌다 방금 뉴스타파 워킹맘 리포트 영상을 봤는데, 엄마들이 정말 걱정했던 포인트는, 내가 없는 9시간 동안 우리 아이는 뭘 하며, 어떻게 지내는지, 그리고 엄마들이 정말 기뻐했던 포인트는, 내 아이가 평범하지만 즐겁게 잘(!!!) 지내는 걸 확인했을 때인 것 같아. 일주일 동안 아이들의 일상을 찍어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엄마들이 정말 행복해 하는구나. 어린이집에서 이런 거 해주면 안 되나? 어린이집은 좀 귀찮겠지만, 굳이 감시하며 감시당하며 가시방석이 아니라서 좋고 엄마는 아이들 모습 봐서 좋고. 물론 이 모든 문제는 믿음과 신뢰의 파괴, 사회 구조적 모순, 심각한 노동 시장의 변태화!에서 비롯되었지만. 그나저나 내가 이 리포트를 보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것은, 대한민국 남자들, 정말 문제다… 흠…. 애 키우는데 아빠가 없어, 아빠가.

    • wisepaper said on 2015-05-07 at 오전 4:44

      어.. 그렇게 동영상 찍어주는 건 대부분의 어린이집, 유치원에서 현재도 하고 있어. 일주일에 한 번씩 사이트에 올려준다든지, 모아서 앨범 dvd를 만들어준다든지. 근데 사실 애들 돌보며 그런 거 찍는 것 자체가 에너지가 들어가는 일이라 차라리 애들 더 잘 돌봐주는 게 낫지 난 저런 데 많이 힘빼지 않았으면 하는 학부모였거든.. 과하지 않게 아주 가끔 보여주는 건 좋지 재밌고 안심되고..

      남자들 부분은, 물론 개인의 문제도 있고 전통적인 통념상의 문제도 있고 이유야 많겠지만.. 이제 그런 이유들을 탓하는 것보다 난 우선 근로문화가 변해야 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함. 부부 둘다 맞벌이를 하면서 아이도 키우면서 무난하게 살아남기가 힘드니까 결국 한 명이라도 살아남아야 하는데, 사회통념상 그 한 명은 아빠가 되는 경우가 많고 살아남기 위해서 그 아빠는 야근, 회식, 회사에 충성 등등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쏟아야 하는 거. 여자뿐 아니라 남자도 쓸데없는 야근, 회식 없이 칼퇴근하면서 일만 잘하면 성공할 수 있는 당연한게 일상이 되는 분위기가 되면 남자들도 물리적으로 시간이 나니까 아이들 돌보는 데 에너지를 더 쓸 수 있겠지. 물론 그렇게 돼도 안 하는 남자들은 있겠지만. 구조가 그렇게 되면 결국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올 거라고 생각함..

      결국은 출산율이나 육아 이런 문제도… 아주 근본적인 많은 문제들과 맞물려 있는 부분이라 어느 하나만 해결한다고 개선될 수가 없구나. 총체적으로 다 변해야 함..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Trackbacks and Pingbacks on this post

No trackbacks.

TrackBack UR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