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배워가는 과정

열음이가 학교에서 친구들과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언어를 익혀가는 과정을 기록해두면 그것도 참 재밌겠다 싶은 게(근데 하기 싫음;;) 정말 단계마다 달라져가는 과정이 확연히 보여서 재미있고 웃기기까지 하다. 아직 학교생활 한 지 두 달 좀 넘은 거라 제대로된 문장으로 말하는 단계는 아니다.

감탄사나 감탄문처럼 감정과 바로 즉결된 표현부터 말이 터진 열음이는 요즘 자기 나름대로는 문장을 구사하고 있다. 근데 그 문장이 아주 기본적인 틀만 문법을 맞추려고 하는 거지 대부분은 문법이 틀린 상태로 터져나온다. 요즘 집에 오면 푹풍 랩처럼 막 쏟아내는데 이런 식이다. “디스 이즈 은율 은율 드링크 워터 디스 이즈 낫 마이 컵, 캔 아이 트라이 디스 레모네이드 마미, 대리, 아론노..디스이즈 가비지 캔 이즈 마이 낫 백 대디 문 아웃사이드 어쩌구 저쩌구^%$^%$#@$#@$#@$#@$ 그 와중에 “돈 터취 미!” 같은 건  또 제대로 말해서 우리를 웃긴다.

우리가 I don’t know 를 “아이 도운 노우” 하는 식으로 발음하면 “엄마 아빠 아닌데. ‘아론노우’야” 한다.;;;;; 동전 nickel을 우리가 ‘니켈’이라고 하면 “아냐 ‘니꺼ㄹ’ 이야” 이러심;;;)

한국에서 일반유치원을 다니며 하루에 20분 정도씩 영어 노래를 배우고 하는 유치원 영어수업 같은 걸 듣긴 했지만 그 때는 집에서 영어로 입도 뻥긋 안 하던 그냥 보통의 한국애였다. 오기 전에 알파벳 쓰는 것만 간신히 가르치고 왔다.

내 생각엔 학교에서 선생님이 영어로 말하거나 영어수업을 하는 것보다 친구들로부터 더 큰 영향을 받는 것 같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언어를 배울 때는 친구들이 그 언어로 말하는 상황에 놓이는게 가장 효과적인 게 아닌가 싶다.

글쓰기나 읽기는 어떻게 해야 하나 싶긴 한데, ornus와 나의 결론은 귀와 입부터 먼저 터져야 한다는 거라서 일단은 지켜보고 있다. 많은 한국 가정들이 여기 처음 오면 아이들한테 읽기 쓰기를 서둘러 가르치면서 빨리 수업을 따라가게 하려고 하는데 그 방법이 틀린 건 아니겠지만, 난 우리가 외국어를 배운 방식(읽기 쓰기 먼저)으로 하고 싶지 않다. 귀와 입부터 먼저 터지고 그 다음에 읽기 쓰기가 같이 가게 하고 싶다.

그렇다고 학교 숙제도 해야 하니 읽기 쓰기를 아예 안 할 수는 없는데 어제는 학교에서 작문을 해왔는데 애가 띄어쓰기가 하나도 안 돼 있어;;;;;; 맙소사 모든 단어들이 다 붙어 있어;;;; 난 무슨 군사 작전 암호인 줄 알았네;; 난 이런 걸 보면 화가 나는 게 아니라 진심 웃긴다. ㅋㅋ 자식을 키우면서 너무 감정이입하지 말고 약간 옆집 애 보듯이 바라보면 이 아이들이 세상에서 무언가를 하나씩 배워가는 과정이 진심으로 웃기고 귀엽다. 관찰하는 심정으로 보면 거리감이 생기니까 의외로 더 객관적으로 보이는 부분도 있고 덜 조급하게 느긋하게 볼 수 있다.

부모는 인생을 바라보는 태도, 가치관, 정서를 형성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부분에 집중하고, 습관의 큰 틀을 잡아주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점점 든다. 나도 아이들의 생활습관을 잡아주는 규칙은 명확하게 제시하고 일관성 있게 지키도록 하는 편이다. 조급하지 않게 큰 틀을 잡아주고 아이가 스스로 성취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게 내 역할이 아닐까 싶다.

 

 

Comments on this post

  1. 심은하 said on 2015-06-11 at 오전 12:59

    저 객관적 거리감,,나는 왜 쉽지않을까. 엄마로서 내가 젤 어려운 부분. 내가 좋은 엄마가 될 수 없는 이유. 도를 닦아야하나. ㅋㅋ
    근데 생활습관 잡아주는건 예를들어 어떻게?
    난 내가 진이 빠지면 쉽게 포기해버려서 일관성 못지킬바엔 애초에 훈육을 안하는게 나을거 같아서 안하고있는데..이러다 갑자기 훈육 시작하면 그게 더 역효과가 되려나..
    11시 넘어서까지도 안자고 돌아다니고 재우려 불끄면 아빠한테 가서 울고불고 떼쓰고…아빠가 늦게오니 늘 짧게만 놀아주게되어서 미안해서 더 훈육 못하고..암튼 악순환이네. 아빠 퇴근하고부터 자기 전까지 아빠를 놔주질 않거든. 퇴근을 8시에 해.ㅠ
    양치 하는것도 늘 실랑이다..ㅋㅋ

    • wisepaper said on 2015-06-11 at 오전 2:19

      거리감은… 저도 처음엔 쉽지 않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맘에 여유가 생겨요.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지금부터 훈련하지 않으면 아이들 사춘기 땐 지옥이래요, 나중에 독립시킬 훈련도 미리하구요.. 감정적으로 너무 밀착하지 않아야 아이를 좀 느긋하게 볼 수 있어요.

      생활습관은.. 저도 아이들 더 어릴 때는 고생을 많이 했지요 말한다고 딱딱 들어먹는 나잇대도 아니었고.. 근데 애들이 좀 크면서 일단 한 번 습관 들면 그렇게 사는 게 일상이 돼요. 우리집은 일찍 저녁 먹고 아빠랑 책 읽고 만들기 좀 하고 뒹글뒹굴 놀다가 8시부터는 서서히 잘 준비하는 시간이에요. 뜨거운 물에 집어넣어 목욕도 시키고 8시 반부터는 양치하고 다같이 누워요.누워서 아빠나 엄마가 옛날 이야기나 우주 얘기 같은 거 해주는 시간이 아이들이 가장 행복해하는 시간이거든요. 이런 얘기 조금 하다가 자장가 불러주면 자요. 이건 아주 특별한 일이 생긴 날 아니면 반드시 지키는 규칙이에요. 애들 자고 나면 진정한 우리만의 휴식.. 이게 없으면 ornus도 저도 못 살아요ㅠ.ㅠ

      근데 부모가 퇴근하는 시간이 늦는 경우는요 어찌됐든 부모랑 시간 보내는 게 가장 중요하니까 이런 시간들을 좀더 뒤로 늦추세요 아직 학교 안 다니니까 좀 늦어도 돼요. 늦추되 규칙을 만들면 그게 일상이 되게끔 온가족이 분위기를 만들고 협조하면 돼요. 아빠 오고 나면 같이 좀 시간 보내게 해주시고 그 다음엔 양치하고 잠자기 의식을 하면 될 거 같아요.

      이런 생활습관이랑 다른 부분도 습관 만들어주기가 중요하다고 하네요(요즘 여기저기 인터넷에서 그런 글을 찾아읽고 있거든요) 학교 다녀오면 좀 쉬게 하다가 숙제를 꼭 끝마치게 하고, 책읽기도 하게끔 자연스럽게 분위기 만들고.. TV는 제가 허용한 주말 몇 시간만 보는 거고 평일엔 아예 안 보는 걸로 알아요. 아주 어릴 땐 말 듣게 하느라 힘들었지만 지금은 애들이 당연한 걸로 알아요. 집에 TV가 틀어져 있지 않으니까 뒹굴뒹굴 만들기하거나 장난감 갖고 뭔가를 하거나 책 읽거나.. 이런 것도 다 생활습관이라고 전 보거든요.

      이런 큰 틀은 부모가 잡아주는 거고 구체적인 자잘한 것들은 아이들에게 스스로 결정할 자유를 주면서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주고.. 동기를 부여하거나 꿈, 목표를 잡게 해주는 거.. 이게 대충 제 교육관인 거 같아요.

      딸래미는 어떤지 모르곘지만 얘네들은 육체적으로 타고난 에너지가 있어서 정말 애들한테서 꿈틀꿈틀하는 본능들(뛰기, 뛰어내리기 등 활동적인 것)들이 있어서 밖에 나가 있을 때 풀게 해주는데요. 집에서도 가끔 저래요. 근데 그럼 제가 못참으니까 저도 혼내고 소리지르고 욱할 때도 많구요. 어쨌든 집에서는 절대로 못 뛰게 하는 규칙을 한 번 정했으면 전 무조건 그렇게 해요. 그래서 애들은 엄마가 정말 무섭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평소에 뽀뽀 되게 많이 해주고 사랑한다 사랑한다 넌 소중한 사람이다.. 이런 닭살 돋는 말 굉장히 많이 해줘요. 애들도 이런 표현을 좋아하는 게 보여요고. 왜냐면 혼날 일이 많은 사내녀석들이라 평소에 저금해놓는 거에요 ㅎㅎㅎ 전 부모들한테 이것만은 강력 추천하고 싶어요. 엄할 때 굉장히 엄하면서 평소에는 사랑을 아주 차고 넘칠 정도로 부어주라구요.

      리플이 길어지는데 저도 사실 쓰면서 제 생각을 많이 정리하게 돼요~ 누군가 제 글에 언니처럼 이렇게 질문을 주면 저도 생각을 정리하면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고치기도 하고 제 생활에도 도움이 됩니당~~

  2. 심은하 said on 2015-06-12 at 오전 1:01

    그래 나도 많은 도움이 되는구나.
    자연스럽고 애가 행복해할 분위기를 만들어주면서 습관을 잡아주는거..

    애정표현..아 이건 내가 타고난 부분은 아니지만 엄마로서 애정표현 못하는건 죄악이라 여기기에 나도 그부분 공감 많이된다.
    근데 난 딸래미라 그런가..거의 유라가 먼저 나한테 사랑한다고 말하고 뒤에 와서 껴안고..밖에서도 뜬금없이 “엄마 사랑해!”외치면 나 완전 부끄러워서 대충 ‘그래 알았어.” 이러게 된다는..
    가끔은 내 사랑이 부족해서 얘가 이렇게 시도때도 없이 애정표현을 하나싶어서..좀 더 많이 안아주고 표현하려 해. 근데 집에서만 하고픈데 밖에선 난감하다.ㅋㅋ
    아 이거 어쩌다 딸자랑처럼 되어버렸나? 근디 은율이 사진을 보니 딸역할 할거같이 생겼는데.ㅋㅋ

    • wisepaper said on 2015-06-12 at 오전 10:12

      유라가 애정표현을 많이 하는구나..ㅎㅎ보신대로 우리집은 은율이가 애교가 많아요.. 몸의 움직임 자체가 애교 덩어리~ ㅎㅎ 저도 또 팔불출 되네요. 죄송해용~

  3. 엽곰 said on 2015-06-27 at 오후 7:36

    영쿡에서는 ‘아이 돈 노우’가 맞아.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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