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니어 산 국립공원
일 년 내내 빙하가 녹지 않는 만년 설산 레이니어에 다녀왔다. 좀 시원하긴 하지만 그래도 반바지를 입는 여름날씨인데 저렇게 빙하가 녹지 않고 쌓여 있어 아이들은 산 위에서 실컷 눈싸움.
레이니어 산 주변으로 꽤 넓은 면적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우린 레이니어 산 남서쪽 입구로 들어가서 가운데 파라다이스 인에서 시작되는 등반코스로 다녀왔다.
레이니어 산은 열음이, 은율이에게 나 어릴 적 자라던 동네에서 늘상 보던 보납산, 불기산과 같은 의미다.
우리집 남쪽 발코니에서 저 멀리 보이는 하얀 레이니어 산. 맑은 날이면 시애틀 어느 지역에서나 남동쪽으로 이 설산이 보인다. 활동하고 있는 활화산이며 높이가 4392m. 저렇게 항상 보이는데도 차를 타고 두 시간 반을 달려야 한다. 넓은 국립공원을 보통 남쪽 입구로 들어가기 때문에 많이 우회해서 가서 두 시간 반이고, 직선거리로 가면 아마도 한 시간 반 쯤이면 될 것 같다. 근데 직선거리로는 길이 없다.
벨뷰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는 고속도로를 타고 한참을 달리다 보면 중간지점에서 국도로 갈아탄다. 국도가 나오면 그 때부터 시골길, 한가롭게 풀뜯는 소가 있는 농가, 헛간이 있는 풍경..
소를 판다고….ㅠ.ㅠ
풀 뜯는 소들. 이렇게 목장이나 농장, 헛간, 축사 이런 걸 보면 가슴이 아련해지고 너무 좋다.
카메라는 왜 이렇게 물 빠진 색으로 찍었는지 모르는데, 여긴 빙하가 녹은 물이 흘러 만든 호수. 미네랄이 많이 포함돼서 색이 보통의 강물 색이 아니라 에메랄드 색이다. 지금보다 8월쯤 가면 더 진한 에메랄드 빛이라고..
이 호수가 나오면 이제 국립공원 입구가 가까워지는 거다.
쭉쭉 곧게 뻗은 침엽수 사이에 길을 냈네.. 시애틀 어디를 가도 이 키 큰 나무를 흔하게 본다. 하다못해 주택가도 이렇게 키 큰 나무들이 사이사이 많다. 침엽수를 좋아해서 시애틀의 이 풍경이 좋다.
드디어 국립공원의 남서쪽 입구. 국립공원이 워낙 넓어 입구는 여러 방향에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이 입구를 택했다. 여기서 차 한 대당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다. 보통 이 안에서도 설산 봉우리까지 꽤 멀고 넓기 때문에 이 안에서 트레일로 등산을 하는 사람, 캠핑을 하는 사람들.. 다양하다.
우리는 차를 타고 갈 수 있는 파라다이스 인 옆의 게스트하우스까지 갈 건데, 차 타고 올라가는 도중에 저렇게 사슴을 만났다. 우릴 빤하게 쳐다보며 가만히 서 있는 이뿐 사슴아.. 열음이 은율이가 엄청 좋아했다.
차를 타고 꽤 올라가다 보니 드디어 설산 봉우리가 가까이 보인다. 오랜 시간 녹지 않은 빙하가 쌓여 있는 산이다. 근데 시간이 지날 수록 아래쪽 빙하가 녹아서 점점 빙하의 양이 줄고 있다고 한다. 저런 계곡으로 빙하가 녹아 내려온다고..
중간 중간 뷰포인트 마다 차를 세울 수 있는 주차장이 있어서 우리도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곤 했다. 달려가는 은율이.
빙하가 녹아 내려오는 계곡이라고..
차를 타고 점점 설산 봉우리가 가까이 보이면 뭔가 신비로운 기분에 휩싸인다.
드디어 차를 타고 올라갈 수 있는 마지막 주차장에 도착.
이곳이 파라다이스 인. 그리고 게스트 하우스
차를 주차하고 바라보니 이렇게 목초지와 키 큰 침엽수가 묘한 풍경을 이루고.
여기서부터 걸어서 한 삽사십분 올라가면 녹지 않은 빙하를 만져볼 수 있다.
태양을 피하고 싶어서~~ 선글라스 형제들~
힘들어하지 않고 뛰어 오르는 열음이. 우린 항상 뒤에 쳐져서 멀리 간 열음이로부터 재촉을 받아야 했다.
오르는 길 옆으로는 야생화들이 참 이쁘게 피었다.
게스트 하우스
길을 오르다가 열음이는 금방 또 저렇게 또래 아이들을 만나서 같이 놀고..
하얗게 핀 이름 모르는 야생화
이은율씨, 선글라스 거꾸로 끼셨어요..
선선한 여름 날씨.
빙하가 점점 가까이 보인다. 우리 같은 일반인들은 그래도 저 멀리 본격적인 빙하산엔 오르지도 못하는데 가다가 스노보드를 들고 가는 청년들을 만났다. 저 위까지 가면 스노보드를 탈 수 있는 코스가 있단다. 그들의 모험정신과 열정이 부러웠다. 멋진 사람들!~~
드디어 녹지 않은 빙하가 보이기 시작한다!!
제법 넓은 빙하가 있는 이 곳에서 아이들은 눈싸움을 하고 놀았다.
한여름에 눈이라니…;;; 기분이 이상함;;;;
설산에 간다고 하니 애들이 스스로 이렇게 겨울장갑을 챙겨왔는데 챙겨 오길 정말 잘했지!
여기서 한참을 눈을 가지고 놀았다. 여름날씨에 눈싸움. 아무리 생각해도 신비로움..
그렇게 내일이 없을 것처럼 놀아주시더니 내려 갈 땐 유모차에서 곯아떨어진 은율이..
아빠 고생한다..ㅠ.ㅠ
돌아오는 길에 시골 마을에 들러 구멍가게에서 껌도 사 먹고.. 동네 사람들이 직접 나와 파는 레이니어 체리도 싸게 사고..
멀리 풀 뜯는 소들.. 난 왜 이런 풍경을 보면 눈물이 나올 것 같은 눅진한 감정이 따라오는지…ㅠ.ㅠ
어린 시절, 다음날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는 토요일 밤 <주말의 명화> 속에서 보던 오래된 영화의 한 장면이 가물가물 떠오르기도 한다. 미국이 내 고향도 아닌데도 향수처럼 진득한 감정이 끓어오른다. 어린 시절 만난 책의 한 장면, 영화의 한 장면이 이리도 오랜 시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니..
헛간이 있고 축사가 있는 농장 풍경이 선사하는 이상한 향수.. 이름도 떠오르지 않는 그 낡은 영화들을 다시 찾아볼 수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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