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남진우
비록 내가 신경숙의 팬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관심을 가진 작가 중 하나였다. 글만 보면 오히려 신경숙보다는 신경숙이 젊은 시절 부단히 필사했다는 오정희의 글이 훨씬 더 내 취향이지만 신경숙은 그에게 항상 드리워져 있는 묘한 분위기나 개인적 스토리에 이끌린 측면도 있고.
20대 때 <외딴방>을 읽고 끄적인 메모가 있을 정도로 그 작품에는 애정이 있었고 그 후 점차 거대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가는 동안엔 그 전과 같은 관심은 아니었어도 호감을 가지고 지켜봤었다. 2004년 시인이자 평론가인 남진우 명지대 교수와의 결혼이 알려지자, 내가 평소에 남진우의 글을 즐겨 읽었던 사람도 아니고 그의 까칠하고 신랄하고 천재적인 글을 흠모했던 사람이 아닌데도 둘의 만남이 은근한 관음증을 소환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남진우는… 문인이 저 정도면.. 단연 미중년. 거기다 영화 속 예민하면서도 뭔가 속세와 떨어져있는 듯한 문인의 이미지를 가진 배역을 위해 캐스팅한다면 딱일 것 같은 분위기를 가졌다. 김영하의 소설 <흡혈귀> 속에 등장하는 ‘백작’은 두말할 것 없이 남진우를 모델로 쓴 글이다. 김영하는 남진우의 ‘고전에 대한 해박한 이해와 동서양을 아우르는 문학적 식견이 그의 천재성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단지 오래 살아온 덕택(흡혈귀니까)’이라는 말까지 쓰며 그에 대한 경외심을 드러냈다. 신경숙은 자기 문체처럼 항상 음울하고 가라앉아 보이는 외모를 가졌는데 평범한 일반인 남자가 여자로서 관심을 갖기는 그 비일상적인 느낌 때문에 좀 어려울 것 같지만, 남진우 같은 사람이라면 둘이 깊이 통하겠지.. 하면서 그들의 통함에 대한 관음이 있었다.
둘이 남녀사이로 가까워지기 훨씬 전, 95년 발표된 <외딴방>에 대한 평론에서 남진우는 이렇게 썼다.
” ‘집’을 떠나 외딴방을 지나온 그녀는 그러나 언어의 집만을 이루었을 뿐
아직 현실 속에선 자 신의 집을 마련하지 못한 모양이다.
그녀가 그 집에 도달하는 날은 언제일 것인지….’
저리 말해놓고 10년 후 남진우는 신경숙과 집을 이룬건지 어쩐지는 몰라도 한 집에 사는 부부가 된 거다.
남진우가 그동안 하일지 같은 작가에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을 표절했다는 통렬한 비판을 연이어 쓰고 여러 문인들의 특정 작가에 대한 유행에 가까운 스타일 차용과 표절문제에 굉장히 신랄했던 평론가였기 때문에 이번 사건에서도 자꾸 이름이 소환되곤 하는데.. 어찌 이런 일로 소환되게 되었는지 씁쓸하다. 10여 년간 계속됐던 신경숙의 몇몇 표절의혹에 대해서 남진우가 부드럽게 넘어갈 스타일은 아닐텐데 그들 사이에서는 이 문제가 어떻게 논의되고 처리되었을지 이해가 안 가는 마음뿐이다.
뭐랄까. 그들의 사상이나 가치관이나 모든 걸 떠나서 자기들만이 가진 ‘세상과 동떨어진 듯한 분위기와 시공간’을 공유하는 매력적인 커플의 모습을 봤기 때문에, 그것들이 이번 일 덕분에 모두 추문이 되어가는 걸 지켜보는 게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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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on this post
난 문학과 멀어진지 오래지만(현재의 주변환경 등등에 의해), 대학에 갓 입학한지 얼마 안되었을때 ‘청맥서점’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읽은 단편이 ‘풍금이 있던 자리’인데, 그때의 여운과 설레임을 잊을수가 없거든.
외딴방도 아주 좋았고.
나도 꾸준히 그녀의 책을 읽은건 아니지만 그래도 한번씩 읽으면 늘 여운이 남는 글들이었는데..
아..안타깝고 허탈하고.
청맥서점이 사라진걸 알았을때도 허탈했는데 신경숙도 버려야하니..내 감각기관이 기억하는 낭만들과 추억의 일부가 떨어져나가는 느낌이라..
세상의 타락을 타락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나도 점점 메말라가게될건가.
이래저래 복잡한 심정.
으..글구 가장 최근에 읽은 ‘엄마를 부탁해’는 아직도 여운이 가시지 않았거든. 그녀가 사기꾼임이 밝혀진 지금도 여운이 안 가심..그 작품에도 표절문장 있다는데도! ㅠ 슬퍼.
암튼 나는 남진우는 잘 몰랐었고..
그저 그녀의 글이 좋았을뿐인데..
오늘 검찰고발까지 당했다니 어디까지 갈지..
이상한 부부이긴 하다.
저도 청맥이 사라졌다는 소식 들었을 때 엄청 아쉬웠어요. ornus랑 매일 데이트하던 곳이고 돈 없는 학생 시절 사고 싶은 책이 있으면 거기서 하루 종일 앉아서 읽기만 하고 오고 그래도 주인분이 항상 친절하셨고 전공책 살 때 아는 척 해주시고 그랬는데..ㅠ.ㅠ
제가 신경숙이고 제 남편이 남진우면, 저는 평론가인 남편과 대화를 굉장히 많이 나눌 것 같거든요. “다른 작가의 아름다운 문장을 가져오고 싶은 욕망이 자꾸 생긴다”는 말까지도 솔직히 고백하고 나눌 것 같아요. 그렇다면 남편도 함께 고민하고 해답도 같이 찾고 그랬을 거 같은데. 저들은 자기 작품의 프라이버시 때문에 그 정도까진 나누는 사이가 아니었을까요. 저라면 진심으로 나눴을 거 같고 그렇기에 10년 넘게 계속 몇 번의 표절을 하는 사태까진 오지 않았을 것 같거든요. 솔직히 사람으로서 한두번 아름다운 문장을 훔치고 싶은 유혹은 누구에게나 있겠지요. 근데 그걸 진작 해소하지 않고 몇 번을 반복한 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요. 혹시 둘다 “이 정도는 표절이 아니다”고 굳게 믿었던 건지. 그럴리는 없을 거 같거든요. 남진우는 다른 작가의 아주 미묘한 표절에 대해서도 신랄했던 평론가였기 때문에..그리고 신경숙이 자기 작품에 대한 프라이버시 때문에 먼저 꺼내지 않더라도 남진우도 분명 10년 훨씬 전부터 표절시비를 알았을텐데 그 때마다 어떤 의견이었을지, 둘이 이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눴을까, 나누지 않았을까. 오지랖이긴 하겠지만 그런게 궁금해지네요..ㅠ.ㅠ
문득 종이 양과 오군의 대화는 공감형일까 문제해결형일까 궁금해졌습니다.
공감도 하면서 해법도 제시하면 가장 좋겠으나, 딱 잘라 시비를 가리고 그건 네가 잘못했네, 라는 말을 들으면 왠지 서운…ㅠㅠ (작가 실드 아닙니다. 그냥 저 남편의 처신이 어렵겠다 싶어서)
저희는 공감 먼저, 그다음이 해결책!이긴 합니다. 제가 오군보다는 성격이 조금더 dirty해서;;; 화 먼저 내는 적이 아주 가끔 있기는 하지만 ㅠ.ㅠ 서로 공감 먼저 해 주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오군은 거의 항상 공감부터 해주는 것 같고. 그 다음 함께 해결책을 고민하는 스타일. 오군은 회사에서 일어나는 일도 중요한 건 거의 대부분 저한테 얘기하고 해결책을 같이 찾는 스타일이에요. 저도 오군한테 마찬가지로 그렇고.
저 위에도 리플 달았지만 저는 제가 신경숙이고 내 남편이 남진우였으면 표절 문제에 대해서도 굉장히 많이 서로 대화를 했을 거 같거든요. 어찌 저런 사태까지 왔는지 미스테리에요. 아쉽고..ㅠ.ㅠ
아, 오군, 아마도 개편하고 다듬는 중이겠지만, 모바일로 보면 위쪽 라이센스 관련 영문장이 첫화면의 3/4를 차지하는데(아이폰5 기준), 의도입니까? 글을 보기 위해서는 바로 스크롤을 내려야 해서 저는 좀 UX가 불편… ㅎㅎ
a님 UX가 많이 불편하셨군요. (공감모드 ㅎ) 라이센스 문구를 맨 밑바닥으로 옮겼으니 이제는 좀 나아졌을 꺼에요. 저는 아이폰6+라서 크게 신경쓰지 않았는데 생각해보니 작은 화면에서는 불편했겠네요. (역시 블로그의 완성은 다양한 단말에서의 UX테스트….!)
심은하 언니의 첫 번째 댓글과 100%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