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남자의 감성의 결

92년에 발표된 윤상의 일렉트로닉 음악들과 다른 시기에 발표된 노래 몇 개.
형용모순인 말 같은데 윤상은 ‘감성의 천재’ 같다. 기술도 실력도 아니고 감성이, 정서가 천재라니.. 보통 사람보다 감성의 결을 수겹 더 가지고 있을 것 같은 느낌.

<새벽>의 저 감성. <기념사진>의 저 세련되고 우아한 벅참. 감성의 아주 미세한 결까지 기계 소리를 쪼개서 만든..

윤상의 음악을 들으면 나이를 느끼지 못한다. 식상해보이는 표현, “나이를 느낄 수 없다”는 말은 “어려보인다, 젊은 감성이다”와 같은 뜻이 아니다. 윤상의 음악은 20년 전부터 줄곧 ‘어른 남자’의 감성을 보여왔고 그 감성이 항상 ‘나이를 초월해’ 있다. 윤상의 외모도. “어려보인다”거나 “동안이다”와 같은 의미에서가 아니라 ‘세상의 나이’ 를 초월한 일관된 어른 감성이 있다. 예컨대 서태지 음악이 항상 ‘어린 아이의 감성을 담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면 윤상은 ‘나이를 초월한 어른 남자’의 정서를 보여준다.

윤상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심장이 차오르다가 눈물이 나는데 김광석이나 유재하 같은 사람들의 노래를 듣다가 나는 걸쭉하고 소탈한 눈물이 아니라 내 감성의 끝까지 만져주는 것 같은 환상을 선사하는데서 오는 슬픔으로 인한 거다.

 

윤상에게 (대중에게 알려진 것만으로 보자면) 안정적이고 강단있고 따뜻한 여자가 곁에 있다는 것이 왜 이렇게 좋지. 질투도 안 난다. 그냥 이런 윤상 곁에 누군가 있다는 게 안심되는 그런 기분이다. 내게 이런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뮤지션은 여자 중엔 이소라.마치 윤상의 동반자처럼 누군가 이소라의 동반자가 되어 곁에 있다면(소라 언니는 지금 그럴 기분 아닌 거 같다만;; 언니 맘대로 사시긔;;) 아마도 비슷한 고마움을 느낄 거 같다. “이런 이소라가 이런 감성 가지고 계속 음악할 수 있게 곁에 서 있어줘서 고마워요” 같은..

우현이나 ornus 같은 남자가 ‘내가 곁에 있고 싶은’ 사람이라면 윤상이나 이소라 같은 사람은 ‘다른 사람이 곁에 있어줬으면’ 하는 사람인듯. 하하^^

 

 

– 92년에 발표된 <새벽>

-> <영원 속에> .. 박창학의 가사도 윤상의 음악과 짝꿍이 되어 가슴을 아릿하게 한다.

영원한 건 없다고 입버릇처럼 넌 말했었지
멀어지는 기억을 잡아두려 애쓰지 말라고
내가 사는 이 곳엔 너의 흔적이 너무 많아서
미안해 아직도 난 너를 보내지 못했어
아직도 난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영원속에 있어
그 때도 이만큼 난 너를 생각했을까?
손 내밀면 닿는 곳에 함께 있었는데
이제서 뭘 후회하는지 아니
너의 탓은 아니야 그건 너의 탓이 아냐

 

 

-<이별 없던 세상>

– <기념사진>

 

– 자살을 암시하는 것 같은 가사, <달리기> ses가 리메이크해서 부르기도 했다.

 

– <마지막 거짓말>

– <내일은 내일>

-<악몽>

괜찮아. 견딜 수 있어.. 눈부신 아침이 멀지 않았으니..

———-

요즘 인피니트 어빠들 컴백 기다리느라 감성이 섬세해져서 갑자기 윤상 음악도 다시 듣고 난리. 내가 정서적으로 섬세해질 땐 ornus에게도 세심하게 잘 대해주게 되는데, 내가 누구에게도 관심 없고 메마르고 건조한 시기엔 ornus에게도 아무래도 건조하게 대하게 되기 때문에 ornus는 내가 이렇게 감성충만한 시기가 좋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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