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거기에 가 닿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앞부분 생략)
열아홉 살, 제 의문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왜 어떤 사람들은 죽을 줄 뻔히 알면서도 그 길로 걸어갈 수밖에 없는 것인가?
(중략)
그래서 쓰기 시작한 것이 바로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제가 소설을 쓴다고 생각하겠죠. 물론 그렇겠죠. 하지만 소설을 쓰다보면 소설이 저를 쓴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습니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연재를 끝마칠 무렵, 저만큼 많이 쓴 건 아니지만 그 소설도 제 영혼에 뭔가 쓰기 시작했습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왜 어떤 사람들은 죽을 줄 뻔히 알면서도 그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으냐면 그 길이 죽음의 길이기 때문이다. 그건 저보다 먼저 살았고, 저보다 먼저 소설을 썼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소설에 무수히 남겨놓은 바로 그 문장이었습니다.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죽음의 길을 갈 때,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는 쪽을 택할 때, 꿈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꿈이 좌절됐다는 것을 알면서도 꿈에 대해서 한 번 더 말할 때, 이 우주는 달라진다는 말. 도스토예프스키가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의 맨 앞장에 인용한 요한복음 12장 24절의 그 말..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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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펴내면서 저는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거기에 가 닿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해하려고, 가 닿으려고 노력할 때, 그때 우리의 노력은 우리의 영혼에 새로운 문장을 쓰기 시작할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타인을 이해할 수도 있고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건 우리의 영혼에 어떤 문장이 씌어지느냐는 것입니다. 왜 어떤 사람들은 죽을 줄 뻔히 알면서도 그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 대답하기 위해서 저는 평생 소설을 써야만 하겠지만, 이것만은 분명합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절망과 오해와 불행 속에서 죽어갑니다. 그런 순간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노력 역시 이 세상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제가 쓰는 소설의 결말은 모두 여기까지입니다. 그런 점에서 모든 소설은 새드엔딩입니다. 뭔가를 간절히 원했던 사람들의 삶이 그랬듯이.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나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사람들은 정말 느닷없이,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마치 기적처럼 바뀐 세상을 봅니다. 하지만 그건 절대 느닷없지도 않고, 기적도 아닙니다. 믿기지 않겠지만 그건 절망과 오해와 불행 속에서 죽어간 사람들이 간절히 소망했던 바로 그 세상입니다.
그러니 절망을, 오해를, 불행을, 무엇보다도 지는 걸 두려워하지 마세요. 우리가 두려워해야하는 건 냉소와 포기입니다. 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 자신에게 위로의 말을 건넵니다.
전문 김연수 블로그 http://yeonsukim.tumblr.com/post/3837115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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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때문에 올리는 글은 아니다. 타이밍이 공교롭게 됐지만.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거기에 가 닿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가 닿으려고 노력할 때, 그 때 우리의 노력이 우리 영혼에 새로운 문장을 써넣는다는 말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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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on this post
우리 열음이에게 밤마다 “열음이는 가슴속에 힘이 있어. 열음이는 항상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사는 멋진 사람이 될꺼야.” 이렇게 얘기해 주잖아. 우리도 어렵다고 포기하지 않고 다시 힘을 내자. 근데 이런 말을 저렇게 가슴에 감동적이게 쓰는 소설가는 참 복 받았네.
우리 1월달에 시애틀 가면 이쁜 옷 입고 데이트하자~
고마워. 나 근데 자기가 열어놔둔 노트북 화면에 자기 페이스북이 열려있길래 쳐다봤다가 눈버렸다. 자기 지인 중 어떤 인간이 “제발 정치 얘기좀 그만해 좀!!! 짜증나” 이러고 글 올린 거 보고 가슴이 칼로 찔리는 것 같다. 대체 왜 내가 그 화면을 쳐다본거야, 대체 왜!!!!!!!! 마이 아이즈~~ 오 마이 아이즈~~ 오 마이 아이즈~~~~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거기에 가닿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 글 밑에 용자이신 융희님께서 “제 글을 안 보기 설정해주세요” 하고 올렸길래, 나도 자기 아이디 그대로 올렸어 “제 글도 그런가요..?..” 하고.. 참을 수가 없었다.
진짜 진짜 타인에게 가닿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절망이 내려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