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이사 가면 구근과 모종을 심으며 정원을 가꿔 필름카메라로 찍어 보고 싶다. 운이 좋으면 이베이에서 100불 정도만 주면 수십년 전에 제조된 손에 잡히는 크기의 낡은 필름카메라를 살 수 있다. 동백과 작약과 수국을 쨍한 디지털카메라로 찍고 싶지 않다. 오래되고 따뜻한 느낌을 간직한 투박한 카메라로 찍어 액자에 걸고 싶어지는 거다.

천천히 시간을 들여 색색 수채화 물감과 붓을 모아서 꽃그림도 그려 보고 싶다. 그림에 대해 잘 모르지만 제일 좋아하는 그림이 모네의 꽃그림이다. 모네의 그림을 좋아하지만 수채화의 청순한 느낌이 좋아 나는 수채화 물감을 갖고 싶다. 색, 색조합..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색이 너무 좋다.

방문이 달린 거실 하나, 옷장을 갖춘 침실, 욕조가 있는 욕실로 이루어진 땅에 붙은 1층은 아무래도 우리 가족은 사용하지 않는 공간이 될 것 같다. 그냥 두느니 좋은 사람(물론 마음의 안정을 위해 여성이었으면..)만 만날 수 있다면 렌트를 주어도 괜찮을 것 같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 쉽지는 않을 거라서 아마도 구하기까지 오래 걸릴 거다. 생각을 더 해봐야지.

지금 살고 있는 고층 건물은 남쪽으로 레이니어 산부터 서쪽으로 워싱턴 호수, 다운타운 시애틀 그리고 눈 덮인 올림피아 산맥까지 보이는 좋은 뷰와 낮에 블라인드 안 내리면 결딜 수 없는 어마어마한 일조량을 갖고 있다.이사갈 집은 창이 남쪽으로 서쪽으로 나 있기는 하지만 이런 통창 달린 고층건물에 비하면 확실히 일조량이 부족하다. 근데 약간 어둑한 그 느낌까지 기대가 된다. 상대적으로 어두운 거실에 앉아 햇빛 쏟아지는 뒷마당 쪽으로 향하는 문을 열고 책을 읽다가 내키면 언제든지 마당으로 발을 내딛을 수 있으니까.

정원에 꽃 심고 나무 심고 카메라를 사고 빵을 굽고 장아찌를 담그고 하는 일들은 당장에라도 시작할 수 있다. 나이 들수록 손으로 뭔가를 만들고 가꾸는 일로 시선이 이동한다. 손에 잡히는 일들. 촉감을 느낄 수 있는 노동.

 

Comments on this post

  1. uks said on 2015-07-12 at 오후 2:05

    뜬금없는 얘기지만,
    왠지 필름은 낮은 ISO 포지 필름으로 찍어서 영사기처럼 생긴 프로젝터를 통해 벽에 뿌려보며 감상하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드네요.
    옛날 생각나서 뒤져보니, 아직도 이런 넘들 생산하나봅니다.
    http://www.fujifilm.co.kr/product/pro_detail_feature_sample.asp?pidx=336&P_Cate1=C&P_Cate2=D&P_Cate3=02
    ㅎㅎㅎ

  2. wisepaper said on 2015-07-13 at 오전 1:50

    오.. 이런 거 감사합니다. 제가 찍고 싶은 사진의 분위기, 색감 같은 건 머릿속에 있는데 기계나 기술 쪽으로는 완전 문외한이라.. 앞으로도 필름 카메라의 기본 지식이나 이런 거 알려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소영언니랑 휴가 오실 여력 있으면 여름에 꼭 오세요~~~~ 나중에 애 어학연수나 유학 시키실 때도 오세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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