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다

산호세에서 2주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ornus가 웃으면서 자꾸 눈치를 보길래 “자기 뭐 말할 거 있구나?” 했더니 그렇다고. 어렵게 꺼내놓은 말은, 고객사에서 산호세에서 앞으로 한 달 간 더 컨설팅을 해주길 바란다고. ?????????????? 다음달엔 우리 이사가 있어서 은행일도 처리할 거 많고 이삿짐도 그렇고 새집 들어가면 할 일 엄청 많은데???????? 한 달 산호세에서 컨설팅하고 설상가상 그 다음주엔 플로리다에 있는 그 회사 지사에서 일주일간 더 일해주길 바란다며. 사실 고객사에서 돈을 지불하고 컨설팅을 더 요청한다는 건 ornus 회사에게는 좋은 일이고 ornus에게도 인정받았다는 뜻이기 때문에 좋은 일이다. ornus가 함께 일하는 회사들이 시애틀과 산호세 실리콘밸리에 있는 IT기업들이고, 이 기업들이 새로운 제품을 런칭할 때 ornus가 아키텍트로서 아키텍처를 설계하는 일을 하는 건데, 이번에 요청한 회사 같은 경우 이번 런칭에 사활을 걸고 있고, 중요한 시점이라 ornus가 난색을 표명했는데도 무조건 와달라는 요청. 하..

ornus의 경력에는 좋은 일이니 싫어할 수도 없는데 진심으로, 난 2주 출장 후 쉬는 타이밍 없이 한 달을 더 버틸 자신이 없다. 아이들 둘과 집에 남아 시간을 보내는 거.. 이번에는 인피니트, 정말 인피니트 컴백 때문에 간신히 버틴거다. 그것도 하루이틀 남은 어제 그저께는 한계에 도달한 느낌이라 말그대로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ornus도 홀로 호텔방에 들어가는 것도 싫고 앞으로 계속 이런 식이면 열음이 학교 다닐 때 아이들 공부를 봐주거나 책을 읽어주는 일도 못할 거고, 아빠로서 그동안 해왔던 우리 가족의 생활습관이 있는데 그 모든 게 깨질 수 있기 때문에 싫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어쩌겠나. 방법이 없는데. 그나마 방학이면 가족들 이끌고 같이 갈수도 있겠지만, 방학이 1년 내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런 분위기면 학기중에도 이런 요청이 많이 들어올 것 같은데, 그건 정말 우리 가족이 견딜 수 없는 상황이다.. 지금까지는 한 달에 일주일은 현장 출장, 한달에 3주는 리모트로 시애틀에서 일하는 방식이 유지돼서 나름대로 평화롭게 살고 있었는데 그 패턴을 깨버리는 고객사가 이렇게 나타나면, 난감해지는 거다.

 

ornus가 일하는 AWS가 정말 말그대로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고 그 성장하는 배에 ornus도 올라 타 있다는 게 우리에게는 주식이라는 성과로 돌아오기도 하고 ornus 커리어에도 굉장히 좋은 일인데, 우리 가족에게는 견디기 힘든 일이 분명하다. 내가 숨이 막혀도 어찌어찌 견딘다 해도, 아이들에게 좋을 일이 아니고 ornus도 이런 아빠가 되어가는 건 절대로 원치 않는다고. 휴.. 차라리 애들이 유아면 학교 안 가도 되니까 다 데리고 같이 여행다니면 되는데 그것도 안 되고.. 방법이 없다. 그나마 생각한 건 난 솔직히 산호세에 놀러가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고, 한 달 이후 플로리다나 가족여행 겸 같이 갈까 싶긴 하지만, 우리한테 돈이 무한정 남아도는 것도 아니고 이번 가을에 인피니트 미국 투어 오면 비행기표 끊어서 공연이 열릴 도시에도 가야 하는데, 이런 식으로 원치 않는 일에 돈낭비하기도 싫다. ornus 회사측에서도 연속 출장이 미안한지 이번 출장으로 인해 못 받은 시애틀 연수가 로테이션으로 다음엔 파리나 런던에서 하는데 그 쪽으로 휴가 겸 가족과 함께 보내주겠다는 제안까지 했다고. 아니 싫다고!!!! 런던이고 파리고 집 떠나는 거 싫다고!!!! 진심이다. 출장 끝나면 9월학기 시작인데 열음이 방학 아니면 가족이 함께 갈 수도 없는데 그딴 제안이 다 무슨 소용이야!!! 학교에 박물관 견학 계획서 이딴 거 제출하고 빠져도 되긴 되지만 학기 시작하자마자 빼달라는 걸 학교가 납득할지도 의문이고-.-

그래서 일단은 ornus가 “이번에 산호세에서 한 달을 더 늘리게 할 거면  가족이 함께 가서 보낼테니 가족의 비행기표를 다 부담하라”는 요청을 해볼 생각이다. 이 요청이 무리가 아닌 게 ornus가 한 달 동안 주말마다 집에 돌아왔다 가는 비행기표 비용+육체적인 부담을 들일 바엔 우리 세 명 더 가서 주말에 안 돌아와도 되니까 세 명 비행기표 비용이 오히려 덜 나올 거다. 안 돼도 밑져야 본전. 생활비와 호텔비는 고객사에서 다 부담하고 있으니까 우리 가족이 함께 가도 그런 쪽으로는 부담이 없는데 솔직히 나랑 애들 비행기표 아까워서 같이 다니기 힘들다. 나 혼자면 가겠는데 애들까지 3장을 더 사야 하는 데 이거 만만치 않음;;; 근데 이번 출장중에 이사 때문에 중간에 들어와야 돼서 이 요청도 말이 안 되겠네..ㅠ.ㅠ

 

ornus가 잘 되어 가는데 이것이 우리 가족에게 고통을 준다는 게 아이러니다. 기쁜데 힘이 드는 상황. 나만 고통이면 어찌어찌 견디겠는데 ornus도 싫단다. 자신이 가족과 떨어져 있는 걸 이렇게 힘들어하는 사람이란 걸 이번 출장에서 여실히 깨달았다고. 그리고 애들도. 열음이는 아빠가 출장 가면 밤마다 아빠가 책 읽어주고 우주 얘기하며 재워주는 걸 못한다는 걸 굉장히 힘들어한다. 믿기 힘들겠지만 아빠 보고싶다고 훌쩍거리며 잘 때도 많다. 어제도 낮에 놀다가 갑자기 나에게 “엄마.. 나의 오늘 걱정은 이따가 잘 때.. 아빠가 보고싶어서 또 울면 어떡하지?” 하길래, 용기를 내서 울지 않으려고 노력하면 된다고 하니까 “엄마. 우는 건 어쩔 수가 없는 거야. 노력해도 나오는 거야..” 하고 항변한다-.-

좋은데 좋아할 수도 없는 일, 싫은 데 맘껏 싫어할 수도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나는 정말로 못하겠다. 차라리 ornus랑 사이가 안 좋은 커플이었으면 돈이나 잘 벌면서 떨어져 사는 걸 기뻐했을텐데,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나 떠오른다. 진심으로 정말로 숨이 막혀온다. 그냥 애들 데리고 육아 하느라 육체가 힘든 일이면 나한텐 이제 별거 아닌데, 정신적으로 보고싶은 게 너무나 죄여온다. 왜 보고싶은 게 이렇게 힘이 들까. 왜 왜… 한심하다. 이제 이쯤 되면 남편 출장 가는 것쯤은 홀가분하게 생각할 연차가 아닌가. 아니 그것도 싫다. 그렇개 정으로 사는 덤덤한 커플이 되는 것도 끔찍히 싫고, 조금 떨어져 있어도 숨이 막히게 그리운 로맨스가 유지된다는 것은 감사한 일인데, 현실적으로는 우리 가족에게 걸림돌이 되는 것이… 이게 뭐하는 일인지 진짜..

 

 

 

 

 

Comments on this post

  1. 심은하 said on 2015-07-26 at 오전 8:28

    아 진짜 뭐라 위로해야할지..
    나는 남편이 저렇게까지 오래 출장간적은 없지만 완전 이해되고, 정말 미칠거같음.
    내가 다 미치겠다 이글 보니..

    • wisepaper said on 2015-07-26 at 오후 4:12

      숨막히고 미칠 것 같은 기분, 이해하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네요. 남편 출장 가면 홀가분하다는 기혼자들 너무 많이 봐서…. 도대체 어떻게 살면 그런 기분을 가질 수 있는 걸까요. 저는 아들 둘 돌보느라 더 힘든 면도 있는데 또 언니처럼 딸과 달랑 혼자 남겨지면 그것도 참 무섭겠네요.

  2. 암헌 said on 2015-07-26 at 오전 10:36

    한국에선 아주 흔하고 심지어 당연한 일처럼 느껴지는 상황인데… 위로가 될런지는 모르겠지만 “잘나가면 원래 그래”

    • wisepaper said on 2015-07-26 at 오후 4:13

      일 잘하고 있는 거 감사하고 좋아할 일이란 걸 아는데.. 정말로 힘들다. 적당한 해결책을 찾아봐야지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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